20160925 마르쉐@ 상암 문화비축기지

20160925 마르쉐@ 상암 문화비축기지

지난 일요일, 예배를 드리고나서 그동안 가봐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있던 마르쉐 장터에 다녀왔다. 

아직 생소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마르쉐는 한 달에 한 번 매달 둘째 주 일요일 열리는 도시형 생활장터다. 기른 사람이 사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사고 파는 직거래 장터로 2012년 부터 지금까지 4년동안 유지되어왔다. 주로 혜화동/대학로에서 열리지만 시민의 숲이나 명동 등 다른 곳에서 열리기도 하고, 이번에는 월드컵경기장에서 가까운 문화비축기지에 펼쳐졌다. 


문화비축기지. 이름도 생소하다. 문화를 어떻게 비축할 것이며 군사시설도 아닌데 '기지'는 또 무엇일까. 이곳은 오일쇼크를 겪으며 민간에서 쓰일 석유를 비축하고자 70년대에 만들어진 저장고로 40년간 출입이 통제되었던 마포 석유비축기지를 시민 문화공간으로 바꿔가는 곳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마포 석유비축기지, 시민 문화공간으로 첫 삽을 뜹니다'란 기사를 참고하자. 내년 4월 준공이 목표란다. 그래서였구나 진입로나 분위기가 공사장 같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마르쉐 앞치마 두른 두 분을 입구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칠뻔 했다. 우둘두둘 자갈길을 지나 제법 넓은 공간으로 들어섰다. 여기가 오늘 장터다. 하늘은 어쩜 이렇게 파란건지, 그에 비례해 태양은 어찌 그렇게 뜨거운건지. 그 아래 눈부시게 하얀 천막과 갖가지 알록달록한 농산물에 눈길을 빼앗겼다. 



마르쉐는 농부, 음식, 수공예 세 팀으로 운영된다. 도착한 것은 12시 점심시간. 문을 여는 11시에 맞춰오고자 마음먹었으나 초행길인데다 자동화기기를 찾아 현금을 찾아 오느라(카드결제가 안된다) 늦어버렸다. 

사람들이 몰리면 어디 앉아 먹을 데도 먹을 것도 없을 것 같아 구경과 쇼핑은 뒤로 미루고 곧바로 음식 팀을 찾아나섰다. 국수, 샐러드, 김밥, 랩, 커리... 다양한 먹을 거리들이 향과 색으로 눈길을 끈다. 




흑돼지 랩, 파스타 샐러드, 허브 소바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이미 테이블 자리는 만석이라 주위에 둘린 의자에 앉았다. 

마르쉐는 일회용그릇을 쓰지 않는다. 대신 보증금을 내고 식기를 빌려쓴 다음 돌려받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번거롭게 빌리는 것도 싫어 집에서 도시락 그릇을 챙겨갔다. 그릇만 내밀면 되니 다른 이들보다 훨씬 빨리 받을 수 있었다. 

  

향긋한 허브가 듬뿍, 허브 소바. 


올리브의 풍미와 라임의 산뜻함이 가득한 흑돼지 샐러드. 

옆에선 흑돼지 랩과 커리도 있었는데 한참을 망설였다. 날이 더우니 역시 뜨겁지 않은 걸로 선택.


집에서 그릇을 챙긴다고 챙겼는데 텀블러를 놓쳐 컵은 빌려야 했다. 정신 번쩍 나도록 시원하고 맛있는 커피. 

점심을 마치고 장을 둘러보다 보니, 굳이 커피 아니더라도 오미자 에이드며 호박 식혜 등등 마실 것들이 많았다. 다음엔 꼭 텀블러를 챙겨가야겠다.


마르쉐에서 파는 물건이 아주 싸다고는 할 수 없다. 아끼는 마음으로 키운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팔 만큼 자부심과 애정을 갖는다는 점, 소비자와 직접 마주보고 거래함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와 정보를 전달하고, 적정하다 생각되는 가격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시장과 다른 점이다. 그래서 몇몇 물건들은 비싸다 싶은 것들도 있는데, 수공예품과 빵이다. 공산품에 익숙한 우리들이 시간과 품이 들어간 수공예품에 익숙해 지기란 사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둥근 호밀빵 한 덩이에 8,000원이란 가격은 구입을 망설이게 한다. 재료도 정성도 품질도 모두 수긍한다손 치더라도, 팔리기를 기다리는동안 바람과 공기에 노출시키는 것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 마르쉐가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한다면 종이봉투나 상자에라도 담아 외부 공기와는 차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지로 인한 오염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빵이 바짝 말라버려 집에 와 아무리 수분을 보충해 따뜻하게 구워줘도 가장자리는 돌덩어리나 다름 없어 아쉬웠다. 


장터를 돌아보며 느끼게 되는 것은, '아, 젊은 농부들이 이렇게 많구나'하는 것이었다. 시골에 내려가 보면 60대는 젊은 축에 속할 정도로 노인분들이 수두룩한데, 마르쉐 장터에 나와 보니 예상 외로 젊은 분들이 많았다. 어떻게 키웠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는지... 애정이 없다면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까. 


깜짝 놀랄만큼 달고 맛있었던 단감, 생각지도 못했던 재료로 만든 각종 잼들, 커피로 배만 부르지 않았다면 마셔보고 싶은 호박식혜, 그림책에서 보던 것처럼 '내가 바로 배요' 하듯 정직하게 생긴 배.... 다 가져올 수도 없고 아쉽지만 꼭 사려했던 고추가루와 한라봉 잼, 목살과 닭가슴살로 만든 수제 햄, 빵 두 덩이만 사기로 했다. 


마르쉐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농부와 음식 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공예팀은 옷이나 비누, 향초, 각종 생활용품도 선보이고 있는데, 이렇게 예쁜 그릇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가운데에 있는 머그와 그릇 몇 가지는 우리 집에 가져다 놓고 싶을만큼 예뻤다. 


이번에는 가져온 가구를 수리해주는 목공팀도 있었는데, 여기 대장간만 하나 더 들어오면 진짜 시장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


아래 사진은 문화비축기지 컨테이너 건물 옥상에 마련된 텃밭. 

그 뜨거운 땡볕에 잘도 시들지 않고 자라고 있었다. 아마 정성으로 가꾸는 분이 있는 모양.


아직 여름이라 갖가지 초록빛이 싱그러워 더욱 생명력이 느껴졌다. 구경도 잘 하고 잘 먹고 물건도 잘 샀다. 뭘 사러 나왔다기 보다는 놀러나온 느낌으로 보낸 장터에서의 한나절이었다. 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어릴적 엄마 손 잡고 동네 시장갈 때 느꼈던 그 신나는 느낌. 놀라운 것은 먹고 구경하고 물건 사고 그렇게 볼일 다 봐도 한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 카트를 끌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느꼈던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기 마르쉐 장터 갈 때는 차 없이, 편한 신발과 에코 백이나 배낭 매고 담아올 만큼만 쇼핑. 이것이 이런 장터를 즐기는 비결이라고 생각된다. 


돌아오면서, 이런 장터가 좀 더 활성화되고 정착되어 소비자도 쉽게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고, 생산자도 좀 더 안정될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한 달에 한 번도 좋지만 좀 아쉽다. 매주 토요일마다 고정된 장소에서 열리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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