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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프라이터 - 타자기 - 워드프로세서의 역사

열매맺는나무 2024. 11. 30. 17:33

타이프라이터 - 타자기 - 워드프로세서의 역사

남편이 외출에서 돌아와 웬 포스터를 한 장 가져다주었다. 발렌타인 올리베티 타이프라이터. 

들여다보니 추억의 타자기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타이프라이터라는 이름으로 발명된 그 물건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타자기란 이름이 붙었고, 세월이 흘러 워드프로세서로 발전했으며, 데스크탑과 노트북으로 스며들었다.

 

타이프라이터 - 타자기 - 워드프로세서의 역사
발렌타인 올리베티 타이프라이터 포스터

 

포스터 첫 머리에는 A Symbol of Pop Art, "an Anti-machine Machine"이라고 적혀 있다. 팝 아트의 상징, 반기계기계. 타자기 = 反기계를 위한 기계 = 팝 아트의 상징이란 뜻인가? 아래에 '현대 노트북의 원조, 들고 다니는 팝아트 예술작품'이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기계는 확실히 기계지만, 단순히 기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계스러움에서 벗어나 예술의 경지까지 올라간 그런 기계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타자기의 역사

문자로 기록하는 방법에는 손으로 쓰는 필사와 활자로 찍어내는 인쇄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 타자기가 있다. 인쇄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렇게 시간과 돈을 들여 대량으로 찍어낼 필요가 없다면 역시 타자기다. 먹지를 종이 사이에 끼우면 두세장 정도는 한꺼번에 찍어낼 수 있다. 

 

레밍턴 타자기

그런 필요성 때문에 타자기는 여기저기서 만들어졌다. 주로 19세기의 일이었는데, 대개 크기가 크고 번거로웠는데, 크기나 모양이 피아노 비슷한 것도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잘 팔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레밍턴 타자기다. 최초로 쿼티 자판을 채용한 이 타자기는 1973년 미국 발명가 숄스 Sholes에게 사들여 만든 것이다. 

 

이 레밍턴이란 회사는 원래 소총 같은 무기를 만드는 회사였다. 지금도 레밍턴을 검색하면 총기를 만드는 remington.com으로 연결된다. 남북전쟁 때도 돈을 많이 벌었겠지. 그런 전쟁이 끝나자 아무래도 회사로서는 위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재봉틀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중 타자기가 크게 히트를 쳐버린 것이었다.

 

1900년대 레밍턴 타자기 광고@위키미디어

 

레밍턴 타자기는 그 뒤로도 개선을 거듭해 타자기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종이를 실린더에 감아 사용한다든지, 줄 간격 조절이나 다음 줄로 이동하는 기능, 먹줄(잉크 리본), 쿼티 자판 등등의 기능이 이미 이 타자기에 들어가 있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작가'라면 고뇌하며 노트북을 두들기는 사람이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20세기 작가라면 역시 타자기다. 커피 향과 담배연기가 자욱한 방에서 타자기를 치는 헤밍웨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럼 최초로 타자기를 사용해서 글을 쓴 작가는 누구일까? 바로 마크 트웨인이다. 그는 레밍턴 타자기로 원고를 작성했는데, 그 최초의 작품은 톰 소여의 모험이다. 톰 소여의 모험이 아니라 미시시피강의 추억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어쨌든 타자기를 사용한 최초의 작가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제피 포퓔레르 Japy Populaire

예쁜 프랑스 아가씨들이 무서운 기세로 타자 경진대회를 벌이는 영화가 있다. 바로 2012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인 '사랑은 타이핑 중(Populaire)'라는 영화다. 1959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사용된 것은 Japy Populaire(링크를 누르면 이미지를 볼 수 있다)라는 타자기다. 하지만 아무리 빈티지 타자기를 찾아도 포퓔레르는 찾을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으론 Personelle(J68)이  있다. 

https://tv.kakao.com/v/49611257

 

 

올리베티 발렌타인 타자기

올리베티는 이탈리아 올리베티사에서 만들어진 이탈리아 최초의 타자기다. 그중에서도 1969년 발렌타인 데이에 출시된 올리베티 발렌타인 타자기는 여러 면에서 정말 혁신이었다. 철제가 아니라 플라스틱을 몸체에 사용해 가벼웠다. 빨강이 제일 유명하지만, 다섯 가지 색상으로 나왔다. 포터블 타자기인데, 위로 열고 뚜껑을 열고 닫는 가방식 아니라 서랍처럼 넣었다 뺐다 하는 형식으로 만들었다. 타자기 뒤쪽에 손잡이가 달려있고, 케이스에 서랍처럼 넣었다가 뺄 때는 그 손잡이를 잡고 빼면 된다.

 

타자기계의 애플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엔 색깔이나 맵시때문인지 타이프라이터계의 페라리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올리베티 발렌타인 타자기 시연모습 https://youtu.be/pRyH1gNe8Bc?si=Kv7is29jHCTbUjpn

 

우리나라 한글 타자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타자기는 1914년 재미교포 이원익이 영문 타자를 개량해 만든 것이었다. 또 1929년 송기주는 언더우드의 휴대용 타자기를 개조해 네 벌식 타자기를 개발했다. 이 타자기는 세로 쓰기 타자기였다니, 정말 신기하다.

 

도입과 역사

광복 이후, 가로 쓰기 방식이 장려되면서 1949년, 조선발명장려회 현상공모에서 상을 받은 타자기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공병우 타자기다. 지금도 종로에 있는 공안과의 초대 원장이 바로 공병우 선생이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것만큼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한문을 많이 섞어 쓰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타자교육 붐이 일어난 것은 1969년, 한 은행이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 50명 채용 추천을 의뢰하면서 학업성적뿐 아니라 뛰어난 타자 실력을 조건으로 달면서부터라고 한다(한글의 기계화, 그 험난했던 100년.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70년대까지 타자수, 또는 타이피스트라고 불리는 직종이 따로 있을 정도로 타자 치는 기술은 대접을 받았다. 심지어 60년대에는 여성 배우자 희망 직업 4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60년대 옛날 영화를 보면 활기찬 사무실의 효과음으로 우다다다 하는 타자기 소리는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려면 빼놓지 않고 챙겨야 하는 자격증이 바로 상공회의소에서 발급하는 한글 타자와 영문 타자 자격증이었다. 최소 3급은 따 놔야 그래도 어디 서류라도 낼 수 있었는데, 1분에 300타 정도는 되어야 했다. 물론 나도 3급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집에 타자기가 있는데도 학원을 다니며 하루 2시간씩 석 달 정도 연습해야 했다.

 

이런 타자 급수 검정시험은 컴퓨터 등장과 확산으로 1995년 폐지되기까지 중요 취업 스펙 중 하나로 자리를 지켰다. 심지어는 급수를 딴 사람은 공무원 인사 전환 특혜(일용직에서 기능직으로 전환)하는 인사 특혜 관행도 있었다고 하니, 정말 중요한 자격증이었다. 90년까지만 해도 평균 응시생이 30~40만 명이었으나 급격히 줄어 94년 9월 시험에는 10만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자격검정시험 내년부터 철폐 타자기 사라진다. 매일경제, 1995. 8.9.).

 

클로버 타자기 vs. 마라톤 타자기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기계를 좋아했다. 새 가전이 들어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서를 보면서 작동법을 익혔다. 뭘 쓰다 잘 안 되고 막히면 식구들은 나를 불렀다. 새삼스레 사용법을 읽느니 나를 부르는 게 편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까닭에 집에서 내 별명은 '이기사'였다. 그랬으니 타자기도 얼마나 갖고 싶었겠는가. 대학교 들어가면서 그동안 용돈 모았던 걸로 타자기를 한 대 장만했다. 

 

그때 당시 타자기의 양대산맥은 경방기계에서 나오는 클로버와 동아정공의 마라톤이었다. 브라더나 올리베티 같은 외제도 있었지만, 학생이  용돈을 모아 장만하기엔 너무 거했다. 아무튼 클로버와 마라톤 둘 중에 어떤 걸로 사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마침내 산 것은 클로버 타자기였다. 아무래도 디자인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마라톤 타자기는 직선 위주 디자인으로 좀 투박하고 기계적인 느낌이 강했다. 반면 클로버 타자기는 색상도 그렇고 디자인도 유선형으로 매끈하게 잘 빠져 매력적이었다. 

 

이런 타자기들은 모두 수동으로, 피아노처럼 키보드를 치면 망치 같이 생긴 활자가 날아가 잉크가 뭍은 리본을 때리고 그 자국이 종이에 남아 글자가 쳐지는 방식이었다. 리본은 보통 검정 한 가지였지만, 위는 빨강, 아래는 깜장 하는 식으로 이중으로 되어있는 리본을 사용하면 빨간색 글씨도 넣을 수 있었다.

 

글을 수정할 땐 어떻게 했을까? 아쉽게도 수정 테이프는 없었다. 공식 문서를 수정할 때에는 두줄 긋고 새로 손으로 써넣던지 입력하던지 한 다음 인주를 묻힌 도장을 찍어야 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타자 쳐야 하는 수밖에. 개인적인 것은 꼼수를 사용했다. 백스페이스로 뒤로 간 다음, 셀로판테이프를 대고 잘못 친 글자를 다시 한번 쳤다. 그러고 떼어보면 딱 그 부분만 활자가 때리고 가서 감쪽같이 지워졌다. 그러 고난 다음 그 자리에 다시 타자를 쳤다. 나중에 펠리칸 블랑코 수정액이 나왔는데, 지저분하지 않게 잘 바르고 말려 사용하는 게 관건이었다. 

 

만약 한글과 영어를 번갈아 가며 사용해야 한다면? 아... 수동 타자기라면 어쩔 수 없이 한 타와 영타 두 대가 있어야 했다. 나도 그랬지만. 영문이 들어갈 부분은 남겨두고 한글 타자기로 다 친 다음 종이를 빼서 영문 타자기에 다시 끼워서 그 부분으로 조심조심 이동해 다시 쳐야 했다. 한자는 물론 손으로 써야 했지. 그래도 전자 타자기가 나온 다음에는 휠만 바꿔가면서 입력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전자식 타자기

그러다 기계식 타자기가 나오고 그 뒤를 전자식 타자기가 이었다. 기계식 볼 타자기는 내가 쳐본 적이 없고, 전자식 타자기는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까지 몇 년간 사용해 봤다.

 

마치 민들레나 들국화 꽃송이처럼 동그란 바퀴모양 활자 휠이 있는데, 이 휠이 돌아가면서 글자가 쳐진다. 수동식 타자기를 치듯 힘을 주어 꾹 누르고 있으면 같은 글자가 드르륵 하고 연달아 쳐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했다. 사뿐사뿐 터치하듯 쳐야 해서 적응하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있다.

 

워드프로세서

전자식 타자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워드프로세서라는 게 등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워드프로세서는 워드나 아래 한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라, 워드프로세서라는 기기를 가리킨다.

 

브라더 워드프로세서 @위키미디어

 

타자기와 흡사하게 생겼는데, 노트북처럼 키보드 뒤에 작은 액정 화면이 있다. 물론 흑백이고, 옛날 전자사전처럼 생긴 화면이었다. 여기에 내가 편집하는 글이 나오는데, 글을 편집하고 저장, 로딩할 수 있었다. 따로 프린터가 필요 없이 워드프로세서에서 직접 출력이 가능했던 걸로 기억된다. 

 

지금도 중고 워드프로세서가 팔리고 있긴 하지만, 이 기기는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멸종되다시피 했다. 타자기에 비하면 그 수명이 정말 짧은 기기였다.

 

화면이 좀 더 컸다면 어땠을까? 다른 짓 하지 않고 오직 글만 쓸 수 있는 데다 프린터가 필요 없으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엔 화면이 더 크고 컬러가 되더라도 컴퓨터를 당해낼 순 없었을 것 같다. 글을 쓰려면 자료도 조사해야 하고, 인터넷도 이용해야 하는데 워드프로세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컴퓨터를 따로 살 바에야 누가 따로 워드프로세서를 사겠는가.

 

만약 인터넷이 가능하다면? 용량이 크다면? 그렇다 하더라도 E잉크라면 현재 이북 리더기를 생각했을 때 쉽지 않을 것 같다. 화면도 바꾼다면? 그러면 그게 노트북이지 워드프로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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