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동 동빙고 단팥죽

이촌동 동빙고 단팥죽이촌동 동빙고


이촌동 동빙고 단팥죽


지난 수요일. 큰 애와 이촌동에 있는 동빙고에 가서 단팥죽을 먹고 왔다. 여름부터 팥빙수~ 팥빙수~ 노래를 불렀는데, 그 많던 더운 날들은 다 보내고 날이 추워진 이제야 단팥죽을 먹게 되었다.  


이날은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영하 6도까지 내려갔다. 단팥죽 먹기 딱 좋은 날. 쌀쌀하고 바람이 불어도 날이 얼마나 청명하고 좋았던지, 걷는 내내 기분 좋았다. 


도착하니 어느새 11시가 넘었다. 곧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 아쉽지만 한 그릇만 주문해서 나눠먹기로 했다. 살짝 눈치가 보였지만, 사장님도 흔쾌히 양해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이촌동 동빙고 단팥죽 2드디어 나온 단팥죽


단팥죽은 작고 빨간 그릇에 담겨 나왔다. 삶은 밤과 은행, 잣, 그리고 떡이 들어있었다. 밤 아래쪽에 소복이 담긴 황갈색 가루는 계피가루다. 계피가 조금 많은 듯 싶었지만 잘 저어 고루 섞으니 기분 좋은 향으로 변해 코끝에 스몄다. 


먹다보니 하얗고 동그란 것이 숟가락으로 건져진다. 아까 봤을 때는 분명 떡이 네모났는데, 새알심이 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깨물어보니 다름아닌 은행. 팥죽색으로 입혀지니 연한 연두빛 은행색은 어디 가고 하얗게 보여 깜빡 속았다. 은행이 씹히니 어쩐지 더욱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땐 팥죽과 단팥죽을 구분하지 못했다. 동짓날. 팥죽을 끓인다고 해서 좋아했다. 많이 먹겠다고 박수를 쳤다. 어른들과 새알심도 열심히 만들었다. 죽을 쑤는 내내 신이 나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먹어 보니 내가 아는 그 맛이 아니었다. 아니, 왜 그 안에 밥이 있어!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 다 그렇듯, 나도 어릴 때는 밥 먹기가 고역이었다. 그런데 팥죽에 까지 밥이 있다니. 분명 전에는 없었는데. 대접 가득 붉은 빛에 불어 죽이 된 허연 쌀이 비치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징그러워 보였다. 밥보다 더 먹기 싫었다. 


왜 우리 집에서는 팥죽에도 밥을 넣는 것일까. 기대했던 팥죽을 망쳐버린 어른들이 원망스러웠다. 밥 잘 안 먹는 내게 밥을 먹이려고 꾸민 일만 같았다. 그 큰 솥 한 가득, 나 때문에 그럴리는 없지만 실망이 컸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은 단팥죽이었고, 동짓날 끓인 것은 팥죽이었다. 



이촌동 동빙고 단팥죽 3햇살 가득한 동빙고



지금은 밥도 죽도 잘 먹는 어른이 되었다. 밖은 찬 바람 쌩쌩 부는 날이었지만, 안쪽은 따뜻한 볕이 가득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행복하다. 나와 함께 한 시간, 아이도 행복했길, 앞으로도 행복하길 바란다.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엄마는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좋겠다. 


엄마, 나도 행복했어. 엄마와 함께라서. 


가격은 7천원. 포장도 된다. 

화장실은 밖으로 나가 앞쪽에 있는 김뿌라 옆 복도로 쑥 들어가야 한다. 더럽지는 않지만, 상가 자체가 오래된 곳이라 그리 쾌적한 환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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