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돌아본 덕수궁, 더웠지만 날씨는 대박이었어
어제. 추석 당일. 아침 먹고 더워지기 전에 좀 걷자고 집을 나섰다. 발걸음은 덕수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엔 편의점에 들러 생수도 한 병 샀다. 덕수궁 연못 근처 카페를 즐겨 가곤 하지만, 혹시나 명절이라 카페 영업은 안 할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입구에 도착해 보니, 추석날은 고궁 입장이 무료. 요즘은 전철 패스 찍듯 그냥 카드로 찍고 들어가 편리했지만, 아예 돈을 낼 필요가 없으니 편리에 이어 작은 횡재를 한 기분. ㅎㅎㅎ
덕수궁 연못 앞 카페
덕수궁의 입구인 대한문을 지나 바로 오른쪽으로 작은 연못이 있는데, 노랑어리연꽃이 한창이다. 이 연못 앞에 기념품 가게를 겸한 카페가 있다. 이 카페 이름은 바로 ‘사랑’. 생각한다는 의미의 사랑인지, 만인의 사랑채 역할을 하기에 사랑인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가 아닐지.
추석 당일은 휴무인 곳이 많아 덕수궁 카페도 문을 닫지 않았을까 했는데, 반갑게도 문이 열려있었다. 외부 테라스에도 자리가 하나 남아있긴 했지만, 너무 더워 시원한 실내로 들어갔다. 시원한 카운터 석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후텁지근한 바깥 날씨는 거짓말처럼 잊게 되고, 그저 운치 있게만 보여 신기했다.
덕수궁 연못 이름
대한문 앞에 있는 이 연못의 이름을 어떤 사람은 ‘경운지’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경운지는 중화전 옆에 있으며 이것은 ‘월담’이라 하기도 한다. 중화전과 석조전 사이에 있는 것은 연못이라기보다는 분수대다. 하지만, 1920년대 사진을 보면, 물개 분수 대신 거북이 상이 있고, 물이 현재 분수대 위쪽 잔디 부분까지 출렁출렁 가득했던 걸 보면 이게 또 인공 연못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떤 것이 맞는 말인지는 나로선 잘 모르겠다. 두가지 설명을 모두 보자면 다음과 같다.
월담
월담(月潭)이라는 이름은 '달빛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의미로, 연못 물에 달빛이 비칠 때 나타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밤에 보면 더욱 운치 있다.
이 연못은 단순히 경관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덕수궁의 풍수지리적 요소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은 음(陰)의 기운을 상징하며, 궁궐 앞에 연못을 두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경운지
경운지(慶運池)라는 이름은 '경사스러운 운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경운지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봄에는 연못 주변에 피어나는 벚꽃이 또,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물에 비치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이 연못은 단순히 미적 기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화재 시 방화수로 사용되거나 여름철 냉각 효과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실용과 자연스러운 심미성을 함께 어우르는 지혜가 무척 발달했던 것 같다.
경운지라는 이름이 맞다면, 이는 덕수궁의 옛 이름인 ‘경운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원래 이곳은 성종의 친형이신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궁으로 쓸 곳이 마땅치 않았던 까닭에 이곳을 임시궁인 시어소(時御所)로 삼게 되었다. 나중에 이곳에서 즉위한 광해군이 2년 뒤 경운궁이라고 고쳐 불렀고, 고종이 퇴위하면서 덕수궁(德壽宮)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석조전
석조전(石造殿)은 고종이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이다. 석조전은 서양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앞과 동서 양면에 발코니가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1910년에 준공된 후 고종은 고관대신과 외국 사절을 만나기 위한 접견실로 사용하였다. 현재는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궁능유적본부)
중화전
중화전(中和殿)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중화전으로 오르는 길인 삼도 중 계단 가운데 답도에는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이 건물이 대한제국시대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편액에 쓰인 중화전이라는 글자 역시 황금색이다. 사대의 예를 갖추던 이전 시대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 대신 봉황을 조각했고, 편액도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되어있다.
답도(踏道)는 근정전이나 중화전 같은 정전으로 올라가는 중앙 계단의 일부 돌판을 가리킨다. 밟을 답에 길 도를 썼으나, 글자와는 달리 밟을 수 없는 길이었다. 왕의 연(가마)만 그 위를 지날 수 있었고, 사실 왕도 답도를 밟지는 않았다. 용이나 봉황이 잔뜩 조각되어 있는 미끄럼틀처럼 경사진 돌을 굳이 위험하게 밟을 필요가 없지 않나.
추석날 돌아본 덕수궁, 더웠지만 날씨는 대박이었다. 정말 사진으로 보면 푸르른 하늘에 흰 구름, 맑은 공기와 햇살. 전형적인 가을날씨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어제도 오전에 잠깐 나갔다가 너무 더워서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너무 지쳐서 명절 음식이고 뭐고 한끼는 간단히 먹으려고 편의점에 들르기도 했다(기대하지 않고 2+1이라 사온 투움바 파스타와 까르보나라가 너무 맛있어 깜짝 놀랐다).
추석. 분명 가을 명절인데, 어째서 이렇게 더울까. 일기예보에 따르면 북쪽의 뜨거운 티베트 고기압이 버티고 있는 데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태풍이 계속 습기를 공급하는 까닭에 이렇게 무덥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고기압이 버티고 있어 태풍이 못 올라오고 있다는 얘기. 태풍 피해를 면하고 있으니, 어찌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이제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자주 내리고, 주말부터는 기온이 떨어질 전망이란다. 토요일 한정이긴 하지만 최고기온이 22도, 최저기온 17도라니. 어제 최고기온 32도, 최저기온 26도였던 걸 생각하면 10도나 낮아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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