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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이야기/일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신문에 올라오던 시절

by 열매맺는나무 2024. 12. 26.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신문에 올라오던 시절

책장을 정리하다 책갈피 사이에 끼어있던 신문 조각을 발견했다. 뒷면을 보니, 달리의 '기억의 고집' 그림과 함께 유럽문화 기행 기사가 있었다. 아마 신문을 읽다 나온 달리 관련 기사를 보고 오려 미술책 사이에 끼워놓았었나 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기사가 아니었다. 기사 뒷면에 있던 TV 프로그램이었다. 연제 신문이었는지 날짜 부분은 잘려 알 수 없지만,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끝까지 신문에 실리고, 오늘의 영화나 볼만한 프로가 요점 정리되어 올라오던 시절이 있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신문에 올라오던 시절
신문에 실린 티비 프로그램

 

그땐 채널 수가 많지 않았다. 원래 3개였던 것이 EBS와 SBS가 늘면서 5개가 되었다. 그래서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같으면 불가능하지. 24시간 방송하는 그 많은 채널의 프로그램을 무슨 수로 다 실을까. 심지어 그전에는 저녁에만 텔레비전 방송을 했는 걸. 화면조정시간과 어린이 시간을 거쳐 골든 타임에 뉴스와 드라마가 나가고 심야 대담프로를 거쳐 애국가로 마무리 짓는 그런 코스였다.

극장이나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면 영화를 볼 기회란 텔레비전 밖에 없었다. 비디오가 나오기 전에는 정말 텔레비전 하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각종 드라마와 함께 주말의 명화, 명화 극장 같은 주말 밤에 하는 영화 코너는 정말 인기가 대단했다. 

게임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사람들은 텔레비전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바보상자라는 말이 나왔을까. 당시 광고를 봐도 일요일 아침이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뒹구는 남편을 떼어내어 청소며 외출을 하려고 있는 아내 모습이 많이 등장했다.  

온 가족이 모여도 텔레비전은 집에 딱 한 대. 물론 여러 대 있는 집도 있고 아예 없는 집도 있었지만 대개는 한 집에 한 대 꼴로 있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녀노소 보고 싶은 것들이 다 다른데. 그럴 때면 리모컨이 없던 그 시절에도 집에서 가장 권력이 센 사람이 결정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길고 긴 명절. 모처럼 노는 날인데 아이들을 불만스럽게 할 수는 없다. 명절이 되면 신문 한 면을 거의 다 차지하다시피 하던 티비 프로그램 순서를 보며 고뇌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는 보고 싶은 프로그램에 동그라미를 친다. 겹치면 문제없이 통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율의 과정이 필요하다. 액션이냐 멜로냐, 코미디냐 정극이냐, 드라마냐 다큐멘터리냐.... 아니면 예능이냐. 이 과정에서 화목하고 단합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고, 독재 성향이 드러나거나 불화가 심화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티비 프로그램 왼쪽 위에 방송국 전화번호가 보인다. 용감하네. 예전엔 민원전화가 지금보다 덜했나. 어떻게 감당했는지 지금으로선 이것도 의문이다. 프로그램 이름 오른쪽에 보이는 코드 번호는 뭘까? 이건 기억이 안 난다. 


언제 신문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꿈의 궁전은 1997년 1월에서 6월 사이, 임꺽정은 1996년 10월부터 1997년 4월 사이 방송되던 드라마였다. 그러니 이 신문은 1997년 1월에서 4월 사이에 발행된 것이겠지?

8,90년대 사용되던 텔레비전 모습 LG대신 GoldStar라고 씌여있다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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