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 2023. 4. 10. 21:19

몰스킨 까이에 포켓에 그린 그림

몰스킨 까이에 포켓

2022년 4월부터 11월까지. 가방에 몰스킨 까이에 공책을 넣어가지고 다녔다.

수목원이나 고궁, 박물관을 다니며 여행객처럼 스탬프도 꽝꽝 찍고 다니고, 다리 아파 쉬는 동안엔 연필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끄적끄적 그리기도 했다.

 

사진도 찍지만, 이렇게 그림으로 그려오면 뭔가 실물로 남는 느낌이 있어 좋다. 덜 휘발된다고 할까.

또 한 권을 마쳤다는 느낌도 좋다. 두껍거나 큰 공책은 무겁고 부담스럽다. 잘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된다. 전에는 몰스킨 라지 하드커버도 가지고 다녔는데, 그것도 무겁다.

 

그런데 까이에는 껍데기도 종이고, 더구나 포켓 사이즈는 작아서 부담도 없다.

게다가 몇 쪽 되지 않아 금방 끝난다. 몇 장 되지 않는다는 건 비경제적이니 단점 같지만 그렇지 않다. 빨리 끝나니 그만큼 뿌듯함을 빨리 느끼게 되어 좋다. 게다가 3권이 한 묶음이니 그 뿌듯함을 세 배로 느낄 수 있다.

몰스킨 까이에 포켓

 

현장에서 그리기

현장에서 바로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거칠고 조악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사진보다 오래 걸리지만, 그때의 느낌과 기억이 오래도록 남는다. 그림을 보며 함께 깔깔거리며 때론 아쉬워했던 것마저 추억으로 남는다. 신기한 것은 그때의 햇살과 온도, 바람, 냄새마저 함께 기억나는 점이다. 신기한 일이다.

 

몰스킨 까이에 포켓에 그린 그림

2022. 4. 22. 폴바셋에서

 

작년 4월 22일. 교보문고에 갔다가 폴 바셋 합정점에서 지친 다리를 쉬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겨우 기운을 차리니 옆에서 라떼를 마시고 있는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잘생겨 보여 샤샤샥 연필로 그려봤다. 

 

2022. 5. 3. 초소 책방

 

5월 3일. 서대문에서 수성동 계곡을 거쳐 인왕산, 초소 책방을 들러 잠깐 쉬다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으로 넘어갔다. 

난 수성동 계곡에서 인왕산 쪽으로 가다 까마득한 계단에 질려 둘레길로 빠졌다.

 

초소 책방에 먼저 도착해 테라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난간 밖은 눈부신 햇살, 내가 앉은 쪽은 그늘에 바람. 시원하다 못해 빵 봉투가 날아가 버리는 그런 바람을 즐기며 그림을 그렸다.

 

비록 연필로 그린 흑백 그림이지만, 내 눈엔 눈부시게 빛나던 노란색 파라솔이 그대로 보인다.

 

 

2022. 5. 5. 덕수궁 연못에서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연못이 하나 나온다. 그 가운데 인공섬이 하나 있고, 그 뒤로 궁궐을 한 바퀴 휘돌아 나온 물이 토해져 나온다. 

 

이 연못 가에는 기념품을 파는 카페가 하나 있는데, 바깥 테라스 자리에서 이 연못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운치가 기막히다. 

때로 쿠키를 사서 먹을라치면, 봉투를 다 열기도 전에 참새 몇 마리가 종종거리며 다가와 머리를 갸웃대기 일쑤다.

"과자를 내놓으시오!"

그들의 말 없는 외침이 어찌나 거센지.

부스러기를 자꾸 대령할 수 밖에 없다. 

 

 

2022. 9. 24. 더 현대

 

이날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시험을 보고 더 현대에 가서 필라테스 수업 때 입을 레깅스를 산 날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 하얀 바탕에 새파란 점이 박힌 곰이 눈에 들어왔다.

 

 

2022. 9. 30. 석촌호수

 

산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평지인 물가를 걷는 것이 더 편하다. 양재천, 불광천, 홍제천, 한강... 그리고 석촌호수도 잘 가는 코스 중 하나다. 

 

석촌호수는 롯데 월드 매직 아일랜드가 있는 서호와 다리 반대편 동호로 나뉘는데, 동호 가장자리에 있는 제이바웃 카페는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하기 좋다. 이날도 우리는 커피와 빵을 먹으며 막 시작되려는 가을을 즐겼다.

 

높은 하늘도, 반짝이는 호수도 모도 새파란 빛이었다.

저녁에 가면 호수를 바라보며 피자에 맥주를 한 잔 곁들이는 것도 시원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 11. 11. 한강공원

 

11월. 늦가을이지만 따뜻했던 오후. 홍제천 마포구청 근처부터 한강공원 망원지구까지 걸었다.

한강에 도착해서는 편의점에서 사 온 하이네켄 0.0을 나눠마셨다.

 

네시 정도 되니 벌써 해가 넘어가려 하고 바람도 거세졌다. 알코올 없는 맥주지만, 마시고 나니 살짝 추워졌다. 

그림도 서둘러 마치고 집으로.

이날 그림은 평소 내 그림과는 좀 다른 느낌.  그때쯤 대니 그레고리 책을 읽었는데, 그 영향인 것 같다.

 

대니 그레고리는 정치학을 공부하고 광고업에 종사한 사람으로, 1995년 그의 아내가 지하철 사고를 당한 다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은 그야말로 데일리 드로잉, 그림일기.

내가 읽은 책은 모든 날이 소중하다와 창작 면허 프로젝트. 

 


 

새로 사보고 싶은 공책도 있지만, 쓰다 만 공책들도 많다. 올해는 그 공책들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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