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을 산책하다

이른 봄을 산책하다

 

지난 금요일. 주변을 걸었다. 입춘은 지난 지 오래지만, 아직도 스산한 것이 꼭 겨울만 같았다. 비록 동은 텄지만 빌딩 숲에 가려진 해가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철빛 메마른 가지에 지겹게 매달려 겨울을 난 말라빠진 배들이 안타까웠다. 한때 꽃은 아름다웠으나 먹지도 못하는 관상용 돌배. 생명력과 효용은 비례하지 않는다.

 

이른 봄. 아직도 매달려있는 배

 

살짝 쓸쓸한 기분으로 걷다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건물 환기구 앞으로 줄지어 모인 마른 낙엽들. 저 작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어떻게 보면 구멍이 마른 잎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정지된 장면은 많은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옛날 수업시간에 생각을 많이 하게 해야 좋은 작품이라고 했는데, 그럼 이것 역시 잘 된 작품. ㅎㅎ

 

빨려들어가는 거야 토해내는 거야

 

걷다 보니 저 앞에서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오른쪽으로 달려간다. 다가가는 나를 힐끔 보더니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은지, 바위에 자리 잡고 앉았다. 이리 꿈틀 저리 꿈틀 들썩이더니 나름 편히 아침잠을 청한다. 꼭 감은 두 눈이 귀엽다. 밤새 뭘 했기에 해도 미처 다 뜨지 않은 아침부터 잠을 자나. 어떤 밤을 보냈을까. 큰 녀석에게 쫓기기라도 한 걸까, 아님 사냥 한판 하고 배가 부른 걸까.

 

아침부터 낮잠이야?

 

이리저리 걷다 보니 드디어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8시 20분이니 동이 튼 지 1시간도 넘었을 텐데. 높은 건물에 가려진 해는 그제야 그 낯을 선보였다. 산골의 아침이 늦는 것처럼, 도시의 아침도 마찬가진 게다.  

8시 24분. 비치는 햇살에 그림자가 길다

 

비치는 햇살에 그림자가 길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때는 하루 두 번.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 그럴 땐 빛의 느낌도 다르다. 노란 것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제 색온도는 그와 반대라니, 이 역시 느낌과 실상은 다르다. 

 

사람의 눈은 줌 기능이 특화되어 있는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다. 카메라와는 다른 것을 본다. 이 사진을 찍을 때도 내 눈엔 햇살이 물드는 숲 속 같은 풍경을 보았는데, 찍고 보니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건물들이 병풍처럼 둘려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 생각에 맞는 것만 수집하는 것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일견 인간의 눈이나 마음이 글러먹은 것 같지만, 또 그 덕에 주변 환경을 보지 않고 다시 일어나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 뒤엔 빌딩이 병풍처럼....

 

이렇게 한바탕 걷고 들어가면 꼭 출근 시간이 된다. 재택근무를 하면 시간이 남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시간 배분이 무척 중요하다. 겨울부터 지분 테쵸라는 수첩을 쓰고 있는데, 꽤 마음에 든다. 오늘에 해당하는 칸이 꽉 찬 걸 보면 하루를 충실히 산 것 같은 생각(착각이 아니길)에 뿌듯해지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뷸렛 저널을 합하면 아주 효과가 좋다. 게다가 1년이 한 권에 딱 들어가니 더 좋다. 그냥 뷸렛 저널을 쓸 때는 한 해에 몇 권씩이나 늘어나 감당이 되지 않았거든. 문제는 일기를 적을 칸이 없다는 것. 물론 이 하루 일기를 이용하면 되지만, 여기에 쓰기엔 곤란한 자질구레한 일들도 많으니깐.  

문득 생각나는 것이 요즘 '미라클 모닝'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같다. 소셜 미디어 해시태그도 사방 #미라클모닝. 하지만 우리 엄마들은 옛날부터 늘 하고 있던 것이었는걸. ㅎㅎ 뭐 어쨌든 사람들이 부지런해지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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