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서서 먹는 명동 서서갈비
명동 서서갈비. 앉지 않고 서서 먹어서 서서갈비다. 원래 마포 신촌 쪽에서 운영하던 곳인데 언제인지 이리로 이전했다. 간판에는 60년 전통이라 적혀있지만, 70년은 되는 것 같다.
연남동 시절엔 서서갈비라는 간판 대신 '연남 서 식당'이라 달고 영업했었다. 듣기로는 서서갈비라는 이름으로 누가 등록을 해버려 이제 못쓰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여기서는 '명동'자가 붙어서 괜찮은가. 서서갈비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지하철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 쪽 애플 매장 뒤쪽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서서갈비. 하늘색 페인트로 칠한 문짝은 연남동 가게에서 떼어온 것 같다. 오른쪽에 매달린 간판은 글쎄... 연남 서식당이라고 되어있긴 한데, 거기서 사용하던 건 아닌 것 같다. 돌출간판 아래 빨간 지붕 달린 상자는 뭘까? 연탄불을 피우는 곳이다. 서서갈비는 연탄불에 굽는다.
진로 소주 상자 위에 놓인 것은 페브리즈 스프레이. 손소독제가 아니다. 고기굽는 냄새가 잔뜩 밴 채로 가지 말고, 뿌리고 가시라는 사장님의 센스 어린 배려다.
코스트코도 울고 갈 창고형 매장
밖에서 보기에 실내가 상당히 어둡다. 밖이 너무 밝은 탓도 있지만, 실제로 실내 조명이 휘황찬란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래 사진을 보라. 코스트코도 울고 갈 정도로 진짜 '창고형 매장'이다.
화덕과 식탁 기능을 동시에 해 내는 드럼통, 냅킨과 수저가 놓인 선반, 고기가 들어있을 냉장고, 소주와 맥주 상자, 포스기. 이게 전부다. 정말 의자도 없다. 술 상자도 그냥 나와있다. 처음처럼, 진로, 테라, 카스. 말이 필요 없이 그냥 한눈에 보고 고를 수 있겠구나 싶다.
다른 고깃집처럼 연기를 빨아들이는 시설이 없다. 그렇다고 화덕 아래에서 빨아들이는 신식 시스템도 아니다. 그냥 열어놓은 문으로 알아서 빠져나가는 자연친화적 시스템이다. 지금은 날이 따뜻해 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상관 없지만, 겨울엔 어쩔 건지. 천장에 닥트 시설이 보이긴 하는데,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이러니 출입구 앞에 페브리즈가 놓여 있는 거다.
그래도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비닐 봉투를 준다. 외투나 가방을 담아 옆에 있는 선반에 두면 고기냄새는 원천차단된다. 직원분들은 친절하지만, 맨 처음 세팅(고기, 석쇠, 양념장, 고추장, 고추, 집게, 가위) 빼고는 모든 것이 셀프다. 음료나 술도 직접 가져다 먹어야 한다.
메뉴는 딱 하나, 소갈비 1대 170그램에 18,000원.
고를 필요 없이 2인분, 3인분 몇사람인지 말만 하면 된다. 여기는 오로지 고기와 음료만 판다. 밥이고 면이고 식사는 없다. 그냥 술과 고기만 먹어야 한다. 술이 싫으면? 탄산음료를 마시면 된다. 대신 고기와 술을 뺀 어떤 음식이든 마음껏 가져다 먹어도 된다. 아예 입구에 그렇게 공지가 붙어있다. 사발면을 가져가든 햇반을 가져가 먹든 상관없다. 밥이 들어가면 고기 판매량이 줄어들 텐데, 그런 건 상관없나 보다.
우리는 일단 2인분을 시켰다. 아래 사진이 2인분이다. 갈비 1대가 1인분이다. 고기는 물론 한우가 아니다. 여기엔 적혀있는 걸 못 봤지만, 연남동 시절엔 국내산 육우나 미국산 또는 호주산을 썼다. 지금도 아마 비슷하겠지. 밥이 없으니 반찬도 없다. 상추나 깻잎도 없다. 대신 새파란 풋고추에 다홍빛이 고운 고추장을 준다.
고기를 구워 찍어먹는 양념장은 2가지다. 마늘을 넣어 바글바글 끓여 찍어먹는 것과 그냥 찍어먹는 것 두 가지. 처음에 불에 얹어 끓이는 걸 보고는 '응? 소고기에 멜젓?'했는데, 살짝 맛을 보니 같은 양념장이다. 깜짝이야. 내가 멜젓을 좋아하긴 하지만, 소고기엔 아니지. ㅎㅎㅎ
두 양념장을 비교하자면, 그냥 먹는 양념장은 마늘과 파 맛이 더 강하다. 끓여먹는 쪽이 마늘을 썰어 넣어 더 센 맛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열에 익어 더 부드럽게 변했다. 양념 맛을 좋아하면 찍어먹는 것도 좋지만, 이미 고기에 양념이 잘 배어있기 때문에 찍지 않고 그냥 먹어도 맛있다. 참고로 고추장이 맛있다. 분명 시판 고추장이고 비싼 것도 아닐 텐데, 희한하게 맛있다. 고추는 맵지 않다. 나중에 하나 매운 게 걸리긴 했지만.
연탄구이 장점 / 요령
연탄이 두 개 들어가 있지만, 한쪽에만 불이 붙어있다. 여기서 후딱 굽고, 옆에 꺼진 쪽으로 밀어 놓으면 남아있는 열로 차갑지 않게 보온이 된다. 타거나 더 익지는 않는다.
연탄으로 고기를 구우면 화력이 일정해 굽기 쉽고 맛도 있다. 연탄불로 구우면 고기 육즙이 마르지 않고 끝까지 촉촉하니 맛있다. 복사열이라 고기의 수분손실이 적어 맛있다... 는 말도 있긴 한데, 그것까지는 모르겠고 숯불과 또 다른 맛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연탄불로 고기를 구울 때에는 좀 부지런해야 한다. 고기 눈치를 잘 봐가며 뒤집고 자르고를 잘 해야 한다. 연탄불이 은은하다는 말만 믿고 가만 놔두면 타버린다. 양념이 있는 이런 고기는 더욱 그렇다. 자주 뒤집으면 맛이 없지 않냐고 하는데, 연탄불에 구울 땐 그래도 된다. 그래도 끝까지 촉촉하게 맛있다.
양념된 고기이다 보니, 굽다보면 연탄불이 있는 쪽 석쇠가 까맣게 된다. 그럴 땐 석쇠를 180도 돌려놓고 구우면 된다. 불판을 갈 필요가 없다.
글을 쓰다보니, 웃기게도 고기 사진은 연탄 위에 올려놓은 고기 사진 딱 한 장밖에 없다. 저 사진 하나 찍고 폰은 뒷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정신없이 굽고 자르고 먹어댔다. 1인분 더 추가해 둘이 3인분을 먹었다. 3인분에 54,000원. 해운대 갈비 1인분 가격이다. 물론 맛과 서비스는 비교할 수 없지만, 거기서 이만큼 먹었으면 15만원이 넘게 나왔겠지. 별 부담 없이 가성비 있게 먹고 나오기엔 서서갈비다.
중요한 고기 맛을 안 썼다. 고기맛은 가격대비 기대 이상이다. 양념보다 고기 맛이 좋았다. 부들부들하고 야들야들 촉촉했다. 석쇠에 눌어붙지도 않는다. 직원도 친절. ★★★★
먹고 나오는 길에 연탄이 있길래 찍어봤다. 참 오랜만에 실물로 보는 연탄이다. 옛날 어릴적에 보면 김장과 연탄을 쟁여야 겨울날 준비가 되는 느낌이었다. 배추 2,3백 포기에 연탄을 천 장 단위로 쟁여놔야 하다니, 겨울을 나려면 목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덜덜 떨면서 춥게 살았으니, 요즘엔 검정고무신에서나 볼 이야기. 우리 부모 세대처럼 격변을 겪은 세대가 또 있을까.
명동 서서갈비 위치 정보
- 주소 : 서울 중구 명동7가길 20-8 (우) 04534
- 전화 : 02-318-6400
- 영업시간 : 월~일 오전 11:00 ~오후 10:00
- 매장 내 식사 가능. 배달 서비스 없음
- 메뉴 : 소갈비 170g 1인분 18,000원
- 결제 : 카드결제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