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일본 여행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일본 여행. 이런 거 저런 거 할 겨를이 없어 그냥 노랑풍선 여행사에서 적당한 상품을 골랐다. 원래는 2박 3일 일정이었으나,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이틀 더 당겨 3박 4일로 가게 되었다.
이스타 항공으로 나리타까지
07시 30분에 이륙하는 비행기라 6시에 미팅을 해야 했고, 덕분에 3시 30분에 일어나야 했다. 아침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모닝롤에 잼과 피넛 버터를 발라 챙겼다. 하지만 면세점 쇼핑 같은 덴 관심 없는 우린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식당을 향했고, 순두부와 된장찌개로 아침을 해결했다.
아침 일찍 서두른 게 무색하게 비행기는 8시가 넘은 시간까지 이륙을 할 수 없었다. 활주로가 너무 붐볐기 때문.
이번엔 이스타 항공을 이용했다. 29F. 오른쪽 좌석이라 가는 길에 후지산을 볼 수도 있는 자리였지만, 그날 서울이고 일본이고 비가 내리는 통에 기대할 수 없었다. 대신 창문으로 보이는 이스타항공의 빨간 날개 끝이 예뻤다. 정말로.
아래쪽은 그렇게 비바람이 부는데, 하늘 위는 그저 새파란 창공에 빛나는 해라니. 비행기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살이가 이렇구나 싶다. 구름 아래선 그렇게 지지고 볶는 인간사, 슬쩍 떨어져 내려다보면 다 부질없는 것을. 그런 마음이 든다.
저가항공은 이번에 처음 타봤다. 신기하게도 앞 좌석 뒷면, 그러니까 눈앞에 모니터가 없다. 영화는커녕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었다.
물론 기내식도 없다. 대신 구운 불고기 주먹밥과 컵라면을 세트로 해서 7천 원에 팔고 있었다. 사진이 나름 먹음직스럽게 나왔지만, 이미 거하게 아침을 먹었기에 맛도 볼 수 없었다. 살짝 아쉽긴 했지만 라면 냄새 풍기는 것도 사실 민폐스러운 일이긴 하다.
나리타 공항에 내려 처음 구입한 것은 바로 물. 저가항공은 물도 주지 않더라. 혹시 달라고 하면 줬으려나? 어차피 가진 동전이 몇 개 없었기 때문에 동전 교환 차원에서라도 물을 한 병 샀다.
거슬러 받은 동전은 옛날 토큰 통처럼 생긴 동전케이스에 넣었다. 칸칸이 동전 크기에 맞춰 금액별로 구분되어 있는데, 잘 모르는 동전을 찾느라 지갑을 뒤질 필요 없이 금방금방 꺼낼 수 있어 편리했다.
내가 쓴 건 막대형으로 된 동전케이스였는데, 두 개 14,800원에 구입했다. 찾아보니 쿠션 케이스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뚜껑을 열면 진짜 화장품처럼 뚜껑 안쪽에 거울도 붙어있다. 한 칸에 7개씩 총 4,699엔을 넣을 수 있다는데, 더 싸고 로켓배송까지 된다. 하나만 필요하면 이게 더 나은 것 같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내가 여행 다닐 땐 비가 오다가도 그치고 해가 났는데, 이상하게 일본에만 오면 비가 내린다. 지난번 후쿠오카에 잠깐 갔을 때도 그러더니, 이번 도쿄여행도 그렇다. 섬나라라 그런가 일기예보도 계속 왔다 갔다 종잡을 수 없이 계속 바뀌곤 했다.
나리타에서 시내로 가려면 한참 걸리지만, 여행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니 가는 길에 슬쩍 점심 먹고 아사쿠사를 들리는 코스를 집어넣어 지루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샤부샤부 돈테이에서 스키야키
일본에 도착해 처음 먹은 음식은 스키야키. 돼지고기로 스키야키 먹긴 난생처음이라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름 맛있었다.
아마 우리가 먹은 것은 맨 위에 있는 돼지로스 정식인 것 같았다. 메뉴판은 샤브샤브지만, 같은 것을 스키야키 먹는 모양이었다. 아래 사진이 먹기 전 세팅된 모습니다. 도기로 된 주전자가 두 개 보인다. 뒤쪽 흰색 주전자는 일반 육수이고, 앞쪽 베이지색 주전자에는 가쓰오부시 국물이 담겨있다.
팬에는 버터가 들어있다. 인덕션을 켜 팬을 달구고, 버터를 녹인 다음 고기와 육수를 넣고 자작하게 졸이듯 먹는다. 달걀 두 개는 날달걀. 집에서 먹을 땐 노른자만 풀어 먹었는데, 여기선 노른자 흰자 구분 없이 다 섞어서 먹었다. 뜨거운 건더기를 찍어먹기 딱 좋다. 사실 날달걀 흰자는 콧물 같아 좋아하진 않지만.
고기를 다 먹고 나면 채소를 먹는데, 우린 집에서 먹던 대로 국물이 흥건하지 않게 자작자작하게 해서 먹었다. 남은 달걀까지 부어 알뜰하게. 그렇게 열심히 먹느라 먹는 사진은 없다. 늘 그렇듯 먹는 데 온전히 충실.
대신 자세히 쓴 후기가 있기에 소개한다.
샤부샤부 돈테이 위치는 나리타 공항에서 3, 40분 걸리는 치바에 있다. 그런데 구글 지도를 보니 폐업한 곳으로 나와있다. 우리가 갔던 것이 바로 이달인데, 그 사이 폐업했다니. 어리둥절하다.
아사쿠사 센소지
밥을 먹은 다음에는 센소지로 향했다. 아래는 가미나리몬 사진인데, 이 문을 통과해 센소지로 들어가게 된다. 문 앞엔 우산 쓴 사람들에 가려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금룡산이라 쓰여있는 현판 아래 엄청나게 큰 붉은 등이 매달려 있다. 앞쪽엔 雷門(가미나리몬), 뒤쪽엔 風雷神門(후라이진몬)이라고 적혀있다.
이 위치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등을 중심으로 문 왼쪽은 뇌신, 오른쪽은 풍신 조각이 놓여있다. 가운데 등은 무게가 700kg이나 되는데, 파나소닉에서 봉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에는 '우리 회사 잘 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업 차원에서 봉납을 하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원래 있던 문은 1865년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 남아있는 것은 1960년 새로 만들어 놓은 철근 콘크리트 문이다.
이 문을 지나 센소지로 들어가기까지 나가미세도리仲見世通り라는 길을 지난다. 에도시대부터 있던 정말 오래된 상점가로 각종 기념품과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원래는 17세기 주변 주민에게 센소지 청소를 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내줬다는데, 지금 보이는 서양식 벽돌 건물은 19세기 퇴거명령을 내리고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날이 우중중하지만 그 덕에 사람은 좀 덜했다. 붐빌 때는 한 시간도 넘게 걸린다니, 우산이 없어도 사람으로 꽉 찰 거 같다. 멀리 보이는 검은 기와지붕이 센소지로 들어가는 입구다.
센소지浅草寺는 도쿄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가는 길에 그림으로 된 안내판이 있는데, 이 절이 세워진 유래를 전하고 있다. 백제 사람 이노구마 어부 형제가 그미다 강에서 고기를 잡던 중 그물에 뭔가 걸려 보니 관음상이었다. 그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사당을 지었는데, 나중에 쇼카이라는 승려가 절을 세운 것이 바로 이 센소지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은 관동대지진과 2차 세계대전으로 대부분 불에 탔고, 지금 보이는 것은 1960년대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문 양쪽으로 인왕상이 있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니오몬仁王門이었는데, 불타 없어진 것을 1964년 한 사업가가 전액 부담한 돈으로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면서 호조문宝蔵門이라 불리고 있다.
이 호조몬을 통과해 뒤를 보면 커다란 짚신이 걸려있다. 앞에 있는 인왕의 신발이라는데, 그러기에도 너무 크다. 어쨌든 액막이용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이 그 신발의 주인공 인왕의 발이다. 우리나라에선 인왕보다 금강역사金剛力士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울끈불끈 한 근육과 힘줄, 열 발가락 끝까지 힘이 들어간 모습이 대단하다. 그와 대비되는 발찌가 재미있다. 저기엔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붕 아래 '미쿠지'라고 적혀있고, 그 아래는 약방이나 도서관에서 볼법한 칸이 작은 서랍이 있다. 미래 운수를 제비 뽑기 식으로 점치기 위한 것으로 100엔을 내면 뽑을 수 있다. 보통 대길-중길-소길-길-반길-말길-말소길-길흉상반-평-흉-소흉-반흉-말흉-대흉 순인데, 가이드 말이 여기선 주로 대길이 나온단다. 100엔의 댓가인가. 점치는 건 싫어해서 하지 않았다. 재미 삼아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 일본인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래는 이 절의 본당인 칸논도観音堂다. 보통 절의 본당은 석가모니 불상이 있는 대웅전이지만, 센소지는 관음불상이 그물에 걸린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절이라 관음당이 본당인 것 같았다. 이것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불탄 것을 1958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한 것.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 있다'는 말은 딱 우리한테 해당하는 말. 슬렁슬렁 구경한 다음 다시 나카미세도리로 향했다. 점심을 먹었으니 달달구리 디저트를 먹어야 하기 때문.
절 바로 앞에 있는 화월당으로 갔다. 소화 20년, 1945년에 창업했다는 이곳은 특히 멜론빵으로 유명하다.
멜론빵 오리지널은 300엔, 5개 세트엔 1,500엔, 휘핑크림 멜론빵은 600엔, 맛차와 바닐라 크림이 들어간 것은 각각 700엔에 팔고 있었다. 아무리 엔화가 내려갔다곤 하지만, 관광지인만큼 아무래도 비싼 게 사실이다.
맛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폭신한 식감, 바삭한 겉면에 소보루와 설탕. 여기까지는 참 좋은데. 특이한 건 거기까지다. 맛은 그냥 밀가루 반죽 맛이었다. 사람 많을 땐 구경도 못 한다던데, 왜 그런 입소문이 난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각종 도검과 골동품을 파는 곳. 뭐라고 읽어야 하나?
Tag라는 이름의 문구점이다. 아기자기한 지우개 세트가 눈에 띄었다.
모퉁이에 미니어처 하우스처럼 앙증맞고 귀여운 집이 있어 찍어봤다. 영업 중인 카페였는데 특제 얼음을 판다고 쓰여있네. 빙수를 말하는 걸까?
쪼그만 뜰채로 금붕어를 건져내느라 여념이 없는 어른들. 오늘 최고기록은 21마리라고 한다. 정말 대단하네.
남편은 저 사람들이 지금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눈으로 봐서 뭐 하는지는 알지만, 대체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는 안 되는 모양. 학교 앞 물방개 경주가 생각나긴 하지만, 그건 상품이라도 걸려있는데 금붕어 낚으면 뭘 주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재미로 하는 거 아닐까? 살아있는 금붕어를 괴롭히는 것 같긴 하지만. ㅜㅜ
이쪽 아케이드는 지붕이 씌워져 있어 좋았다. 비도 들이치지 않고 바람도 없고. 그런데도 사람은 덜하니 신기.
정말 귀여운 미니어처 인형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귀엽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져가기는 그런 꽃 같은 존재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 데려오진 않았다. ㅎㅎ
이곳은 전통 센베를 파는 곳이었는데, 고양이 얼굴을 한 과자도 있었다. 이것 역시 하나에 300엔. 상할리 없는 과자니 아이들 보여주고 웃으려고 하나 샀다.
고구마 과자를 파는 오이모야상이란 가게. 빤짝빤짝 윤기 나는 것이 맛있어 보여 사 먹었다. 보기와는 달리 맛은 그저 그랬다. 하나씩 먹은 게 좀 아까울 정도. 손가락만 한 것이 370엔. 신기하게도 일본에선 사쓰마이모라는 말 대신 스이토뽀테토라고 하는 것 같았다.
다이가쿠이모라니 대학고구마인가. 1876년부터 팔 기 시작한 인기 있는 길거리 고구마 음식이란다. 타이야키(붕어빵)이나 미타라시당고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자부하는 걸 보니, 이걸 먹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너무 배불러 패스.
자유여행으로 아사쿠사를 방문했다면?
자유여행이거나 아사쿠사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면 더 해볼 것이 있다. 경복궁 옆에 한복을 빌려 입을 수 있는 곳이 있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기모노 렌탈 체험을 할 수 있다.
또 인력거를 타고 주변을 돌아볼 수도 있다. 사실 기모노 체험보다 인력거 쪽이 좀 더 끌린다. 적당한 속도로 이동하면서 재미있는 입담으로 주변을 안내한다는데, 일본어를 못해도 그에 맞춰 안내를 해 준다니 솔깃하다. 가격은 30분에 9만 원이 채 안 되고, 시간과 인원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다음 글은 요코하마 갔던 이야기로 시작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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