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네 해적선 & 신사, 수상 도리이, 삼나무 숲길

하코네 오와쿠다니계곡 다음 코스는 아시노 호수에서 타는 해적선과 하코네 신사 방문이었다.
 

아시노 호수

아시노 호수는 3천 년 전 하코네 화산 폭발로 생긴 칼데라 호수다. 날이 좋으면 멀리 북서쪽으로 후지산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하코네 해적선 & 신사, 수상 도리이, 삼나무 숲길
아시노 호수 그림지도. 글씨만 보고 지도를 붙였는데, 북쪽을 위로 하려면 90도 정도 틀어야 한다.

 

도겐다이 해적선

해적선이라 이름 붙은 유람선을 타기 위해선 도겐다이(桃源台) 항으로 가야 한다. 정식 이름은 ‘하코네 관광해적선 도겐다이항’이다.
 

사진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표를 사고 줄을 서서 내려가면 항구로 들어가 배를 탈 수 있다. 한참 내려가 밖으로 나가니 선착장 양쪽으로 배 두 척이 매여있었다. 우리가 탈 것은 왼쪽 배. 이 배를 타고 하코네 신사 쪽으로 갔다.
 

도겐다이항



적진으로 달려가는 듯한 황금빛 로마 병사 조각으로 장식된 뱃머리를 비롯해, 외양을 보면, 어째서 해적선이라 하는지 알 수 없다. 배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에 해적 인형이 보이긴 한다.
 

해적선 로쿠이야루호
해적선 내부. 잠깐 해가 났다.


그저 ‘해적선’이라고 이름 붙여 관광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로 보이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 역시 난 대문자 T인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것이 좋다.

잔뜩 흐리던 날이 배를 타고나니 거짓말처럼 볕이 나기 시작했다. 배를 타고 가는데 어쩐지 남이섬 갈 때 느낌도 들었다. 우중충한 날씨에 돌아다니다 잠깐이나마 기분전환이 되었다.
 

사쿠라혼진 우동정식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내린 우리는 사쿠라 혼진(櫻本陣)이라는 가게에 들러 우동정식을 먹었다. 고체연료가 타는 화로에 작은 냄비를 얹어 우동을 끓이면서 함께 나온 채소와 고기 몇 쪽을 넣어 익혀 먹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밥과 국, 고로케와 양배추 약간이 술(포도즙)과 함께 곁들여 나왔다.
 

사쿠라혼진 우동정식

 
일본에서 먹은 대다수 음식에는 돼지고기가 즐겨 사용되었는데, 스키야키, 샤부샤부, 우동정식 등에 전부 얇게 썬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이런 음식에는 소고기를 넣어먹는 우리와 달라 무척 낯설었다. 더구나 기름 없는 부위도 아니고, 이렇게 삼겹살을 국물요리에 넣어 먹다니. 난 불호.
 

하코네 신사

감흥 없던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5분 정도 이동해 도착한 곳은 하코네 신사.

솟대 비슷하기도 하고 뭔가 많이 생략된 일주문 처럼 생기기도 한 빨간 도리이 앞에 섰을 땐 반짝 나왔던 해는 간 곳 없고 또다시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도리이의 붉은 색은 피를 상징한다고

 

붉은 도리이

도리이의 선명한 붉은색(주홍색)은 피를 상징한다. 정말 피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핏빛을 칠함으로써 죄와 악을 물리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붉은색이 피를 상징하고, 그 피에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우리나라에는 동지 팥죽을 문에 바르고 뿌렸다. 옷소매 끝동과 옷고름, 옷깃, 치마가 붉은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멀리 고대 이스라엘에선 유월절 어린양의 붉은 피를 문설주와 인방[각주:1]에 발라 죽음의 사자가 그냥 지나가도록 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예표한다.

지구촌 사방에 퍼져있는 ‘피의 능력에 대한 신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특별히 유대교나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오랜 세월 대대로 전해진 문화와 유전자에 새겨진 기억의 편린이 아직도 남아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 가설이다.
 

고마이누

하여튼, 그 앞에 서서 물끄러미 고마이누를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나라 해태나 중국의 돌사자가 생각난다. 상하이 갔을 때도 사자상을 본 적 있지만, 그것보다 이곳 고마이누 묘사가 훨씬 정교하다. 곱슬거리는 털을 한 올 한 올 나타내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고마이누(高麗犬, こまいぬ)가 뭔고 하니, 신사 앞에서 액을 막기 위해 세워놓은 한 쌍의 동물 조각을 가리킨다. 어떻게 보면 사자도 닮았지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개라니 개인가 보다 하는 수밖에. 이름부터 고려개(고구려개)라니,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개인 것은 확실하다.
 

고마이누

 

하코네 신사

신사가 있는 곳에는 뭐가 있다? 바로 계단이 있다. 남산에 그렇게 수직에 가까운 계단이 있는 것도 일제가 거기에 신사를 놨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신사는 그렇게 높은 곳에 짓는 걸까? 그것은 일본이 태양신을 섬기기 때문이다. 일왕이 바로 그 자손이라 하지 않는가. 일본 국기 일장기는 흰 바탕에 빨간 해가 가운데 있다. 패전 전에는 그 해에서 햇살이 사방으로 퍼지는 욱일승천기를 썼다.

잉카제국의 피라밋 역시 안데스 산 산꼭대기에 있고, 그 피라밋에도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올라가면 태양신에게 제물을 바치던 제단이 있다. 그들 역시 태양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흑요석으로 만든 돌칼로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 바쳤는데,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제물이 되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니 신기하다.
 

하코네 신사

 
하코네 신사는 원래 무사들이 승리를 위해 방문했지만, 요즘은 재운, 액막이, 소원성취, 교통안전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신사 옆 삼나무 숲길엔 이런저런 회사에서 시주했다는 표시가 줄지어 있다.

그 옆에는 또 작은 신사가 하나 더 있는데, 구즈류(九頭龍) 신사라고 한다. 옛날, 이 호수에 머리가 아홉 개 달린 용이 살았는데, 어떤 승려가 그 용을 무찌르고 신사를 지었다고 한다. 어째서 승자의 이름이 아닌 용 이름이 붙었는지 아리송하다.
 

구즈류신사

 

삼나무 숲길과 수상 도리이

여기서 호숫가로 슬슬 내려가는 길은 울창한 삼나무 숲길이다. 돌 난간에도, 줄지어 있는 등에도 시주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중엔 회사 이름도 꽤 있었는데, 사업 번창을 위한 것인 것 같다. 센소지에서도 그렇고, 회사 이름으로 절이나 신사에 거액을 시주하는 것, 그리고 그걸 드러내는 것이 일본에선 흔한 일인 것 같았다.
 

난간에도 등에도 시주한 사람들 이름이 빼곡하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호숫가에 지은 도리이가 나오는데, ‘평화의 도리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사진을 찍어보면 마치 물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진 찍기 딱 좋은 스폿이다. 그래서 그런지 비바람이 부는데도 사진을 찍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단했다.

줄이 긴 건 딱 질색이라 멀리서 한 장 찍고 그냥 패스. 나중에 맑은 날 찍은 다른 사진들을 보니, 와. 날씨가 사진 분위기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알 수 있었다.
 

평화의 도리이

 


 
날씨가 좋으면 하코네 오고 가는 길에 후지산이 이렇게 보인다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자욱해 후지산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여행 가면 늘 날씨가 좋은 편인데, 이번엔 영~~
 

날씨 좋은 날은 하코네 가는 길에 이런 후지산을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난 못봤지만...




 

위치정보

이번 글에 등장한 곳의 위치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혹시 필요한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도겐다이항

 

사쿠라혼진

 

하코네 신사

  • 주소 : 80-1 Motohakone, Hakone, Ashigarashimo District, Kanagawa 250-0522 일본
  • 전화 : +81460837123
  • 웹사이트 : http://hakonejinja.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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