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그리고 엄마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아님 6학년 쯤 되었을 때였을 게다. 

여름이었는데 친구들과 어찌어찌 하다 날도 덥고 하니 수영장에 가서 놀기로 하고 신나게 집으로 들어갔다. 

아뿔사, 엄마가 안 계셨다.

수영가방은 혼자 챙겨도 해결 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입장료, '돈'이 문제였다.  




돼지 저금통이며 책상 서랍을 다 뒤져도 입장료가 되기엔 얼마큼이 모자랐다. 

옳거니!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입었다 걸어 놓은 옷 주머니에는 다만 얼마라도 있겠지 싶었다. 샅샅이 뒤져도 한계가 있었다. 동생들이야 말 할 것도 없이 나보다 돈이 더 없을 터.  아이들이랑 수영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은 다가오고 엄마는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고... 그야말로 속이 탔다. 급기야 급한 마음에 엄마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겨울에 입었던 코트, 바바리 코트, 바지 주머니... 지폐도 나왔지만 난 양심적으로 모자란 액수 만큼만 집어 들고 날쌔게 수영장이 있는 쇼핑센터로 달렸다. 

그리고 정말 정말 신 나게 놀았다. 

아직도 그 때 입었던 수영복이 생각난다. 파란색, 남색, 흰색 무늬가 든 비키니 수영복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 또래 아이들은 어른스러워 보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노는 것은 아이들 놀이. 수영도 하고 물싸움도 하고 누가 오래 견디나 잠수도 하고 물속에서 꺅꺅 소리지르며 술래잡기도 했다. 그리고는 배가 고파지자 녹초가 되어 각자 집으로 향했다. 다음에 또 오자고 즐겁게 약속도 했다.


기분 좋게 피곤한 상태가 되어 도착한 집엔 엄마가 와 계셨다. 허락도 받지 않고 나가버린 터라 자연스레 눈치를 보게 되었다. 

"엄마..."

제대로 말리지도 않고 나온 머리는 누가 봐도 수영장에 다녀온 티가 났다. 

"응, 잘 다녀 왔니?"

"으,응..."

"재미있게 놀았겠네?"

'으응?'

뜻밖에 부드러운 엄마 음성에 마음이 놓였다. 이러고 저러고 하면서 놀았다고 신이 나서 보고했다. 그리고는 미리 말씀 드리고 가지 않고 멋대로 나가버려서 잘 못했다고 살살 용서를 구했다. 나름 용기 있게. 그땐 엄마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이해해 주셨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해해 주신거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돈 모자라지 않았어?"

앗...

"좀 모자라서 엄마 안 입는 옷에서 가지고 갔지."

"남의 돈이나 물건을 말 없이 가지고 가는 건 나쁜 거야."

"그때 엄마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미리 빌린 건데."

엄마 얼굴이 굳어졌다.

"도둑들도 다 그렇게 말해. '빌린'거라고."

"얼마 안되는데..."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거다." 

엄마 목소리는 엄숙해졌다.

"자, 몇 대 맞을래?"

내 눈은 동그래졌다.

"엥? 잘 놀고 왔다면서~"

"놀다 온 게 문제가 아니야. 다음 번에는 이렇게 남의 물건에 손 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거지.

자, 동생들 오기 전에 얼른 맞자. 

몇 대 맞을래?"

"세 대."

여름이라 반바지 입고 다니니 걷을 바지도 없었다. 옆에 있는 의자 위로 올라갔다. 

"엄마, 안 아프게..."


그렇게 하나 둘 셋을 세면서 종아리를 맞았다. 뒤져서 돈을 가져갔던 바로 그 현장에서. 


정말 그 땐 수영장 갈 생각 밖에 없어서 엄마 주머니를 뒤진다는 것이 나쁜 짓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석 대의 회초리와 가르침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그 때를 철없던 시절의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을까?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