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1. 

글을 쓴다는 것은 바가지로 물을 퍼내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의 물은 바다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강일 수도, 졸졸 흐르는 시냇물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물물이거나 샘물일 수도 있다. 수량은 다르고 물 맛도 다르지만 퍼내도 퍼내도 계속 퍼낼 수 있다는 점은 같다. 내 샘이 작은 옹달샘 같아 물을 몇 바가지 떠내고 나면 없으리라 생각되어 주저한다면, 그래도 퍼내라. 샘은 퍼내면 새로 솟는다. 그것이 샘이다. 한 바가지 밖에 안되 보였는데 퍼내면 또 거짓말 같이 그만큼 또 채워지는 것이 샘이다. 퍼내지 않으면 그대로 한 바가지지만 퍼내고 또 퍼내면 한 바가지에 또 한 바가지 계속 보태져 그 양은 비교할 수 없게 많아진다. 



2. 

글을 쓴다는 것은 습관이다. 운동이나 피아노 연습을 며칠 게을리 하면 몸이 굳듯 글쓰기도 며칠 놓으면 술술 풀리지 않는다. 글을 처음 쓰려고 하는 사람은 그저 아무거나 아무 말이든 생각나는 대로, 혹은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저 줄줄줄 써 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일단 써 버릇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림 그릴 때 처음부터 역작을 만들어 내려고 고심할 것이 아니라 일단 백지를 두려워 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자꾸 그려보는 것이 중요한 것 처럼 글 쓰는 것도 처음엔 그저 되는 대로 줄줄 써 내려가 버릇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글은 습관이다.  



3.

글을 쓰는 것은 호러영화다. 백지에 대한 공포, 소재빈곤에 대한 공포, 잘 될 것 같지 않다는 공포... 이런 여러가지 공포들을 극복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상영시간이 지나고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나면 환한 극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 



4. 

글을 쓰는 것은 소통이다. 흔히 시공을 초월한다고 한다. 몇 백 년, 몇 천 년 전 글 쓴 이와 오늘날의 독자가 서로 교감을 하고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의 글을 읽는다.  그리고 그 감상을 서로 공유한다. 비행기나 기차를 탄들 그렇게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을까. 



5. 

글을 쓰는 것은 공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독자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종이 책이나 블로그 글, 트위터등 소셜네트워크 글등 모든 글들은 누군가 읽을 것을 예상하고 쓰는 글이다. 혼자 읽기 원하고 남들이 보거나 인용하거나 링크 거는 행위가 싫다면 일기장에 쓰든지 비밀글로 잠궈둬야 할 것이다. 



6.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 자리에 들 때도 아침에 눈을 떠서도, 좋은 걸 보고 먹고 듣게 되면 자동적으로 생각난다. 글을 안 쓰면 애인에게 늘 하던 연락 빼먹은 것 같아 죄책감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상대에게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늘 글을 떠올리게 되고 몰입한 상태에 있게 되니 사랑에 빠진 것과 다른 점이 없다.   



7.

글을 쓰는 것은 화장하는 것과 같다. 늘 고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으나 가끔 형편없이 화장이 안될 때도 있고 똑 같이 한다고 했는데 예상 밖에 너무나 잘 되어 기쁘고 놀라울 때도 있다. 때론 다른 분위기로 변화를 주고 싶기도 하다. 변화된 모습에서 때론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때론 어색함을 느끼기도 한다. 작가들의 글이 모두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글쓰는 것이 화장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늘 풀 메이크 업으로 단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드 메이크업으로, 혹은 맨얼굴에 가깝게 소탈한 글을 쓰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글 쓰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아마츄어가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글을 쓰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가소롭긴 하다. 하지만 이것은 정의라기 보다는 느낌, 인상을 적은 글이다. 그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느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갑자기 카메라 똑바로 보며 선언하는 여자 개그맨의 표정이 생각난다.  "나,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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