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경포대 바다열차 대관령 양떼목장 주문진 열차여행

강릉 경포대로 해돋이 여행을 떠난 것은 작년 9월 20일이었다. 그땐 정말 우한 폐렴이니 코로나니 하는 걱정은 1도 없던, 평화로웠던 때였다.

 

느지막이 잡은 여름휴가를 다녀왔고, 여행 기록을 남겼던 빨간색 작은 수첩은 잃어버렸고, 그 핑계로 여행 다녀와서 정리해 올리자고 마음먹었던 유럽 여행 관련 글은 하나도 올리지 못하던 무렵이었다. 얼마전 그 수첩은 찾았지만, 그 여행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오늘은 주말. 어젯밤부터 내린 비는 그칠줄 모르고 추적추적 아직도 한창이다. 바람도 거칠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 꾸물꾸물한 와중에 돌아다녔던 그때가 생각나 앨범을 뒤져봤다. 

 

강릉 경포대 바다열차 대관령 양떼목장 주문진 열차여행

 

열차를 타고 여행할 때에는 코레일 투어라는 여행사를 종종 이용하곤 한다. 사실 처음에는 코레일투어라고 해서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회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이름만 코레일이었을 뿐, 아무 관련 없는 업체다. 그래도 여행 구성이나 운영도 괜찮아 몇 번 이용했는데, 실망한 적은 없었다. 

23:20 청량리 역 출발

생각보다 역에 일찍 도착했다. 주변을 이리저리 걸으며 시간을 보내다 열차를 탔다. 운행중 불을 깜깜하게 끄는 고속버스와 달리 기차는 불을 환하게 켜 둔다. 그러니 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울고 칭얼거리는 갓난아기가 있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평소면 안락한 잠자리에서 푹 쉬었을 저 아기. 모처럼 해돋이 여행을 결심한 부모 덕에 난데없는 불빛과 눕지도 못한 채 밤새도록 흔들려야 하다니, 아이에겐 사실 여행이 아니라 봉변인 셈이다. 딱해라. 한 자녀만 두는 가정이 많다 보니, 사실 모든 부모가 초보다. 아이도 인생이 처음이지만, 부모 노릇도 처음. 초보끼리 만나 고생이 심하다. 당사자는 오죽하랴. 우리도 그랬지 않은가. 마음을 달래가며 다섯 시간을 달렸다. 

04:42 정동진 도착

새벽이라지만 아직은 칠흑빛 사방. 은하철도 999처럼 기차는 어둠을 헤치고 태백산맥을 가로질러 정동진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퉁퉁 부었을 얼굴을 세수로 다스리고 이를 닦았다. 개운해진다. 산뜻해진 마음으로 역사를 벗어나 주변을 돌았다. 좀 있다 아침을 먹을 곳도 물색하고, 여행사 사람들과도 만났다. 

 

강릉 하면 초당두 부지. 이른 새벽 문 연 식당에 들어가 순두부 한 그릇씩을 먹었다. 시간이 일러 한산한 식당. 온돌 바닥이 따뜻하다. 졸음이 저절로 온다. 밖은 어둡고 추운데, 미리 나갈 필요 있나. 벽 곳곳에 계절별 일출 시간이 큼지막하게 쓰여있다.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돋는 해를 맞아하러 밖으로 나갔다.

 

정동진 역에서 바라본 동해

 

 슬슬 주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심하다. 저 멀리 집어등을 환하게 밝힌 오징어잡이 배가 보인다. 과연 오늘 해돋이를 볼 수 있을까?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역시.... 해는 돋았지만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다. 바다 위로 낮게 깔린 구름 아래 슬며시 보이는 붉은빛이 해가 뜨고 있음을 알려줄 뿐. ㅎ.... 저 배는 만선의 꿈을 이뤘을까? 

 

낮게 깔린 구름사이로....

시간이 흐르니 붉었던 하늘도 조금씩 제 빛을 찾아간다. 시선을 남쪽으로 이동시켜보니 빛에서 느껴지는 온도가 또 다르다. 푸른 빛이 덜 하고 주광 빛이 더해졌다. 

 

동남향을 바라보니....

 

일출 보러 바다에 왔는데 뭐라도 잡아보자 싶다. 꿩 대신 닭. 솟아오르는 태양빛 대신 조게 껍데기를 모아 손바닥에 올려본다. 빛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다. 도로 바닷가 모래밭에 버리고 바다열차를 타러 올라갔다. 

 

정동진에서 만난 조개껍데기

 

08:33 동해 바다열차  > 경포대 > 오죽헌 > 주문진 어시장

바다열차 선로
촛대바위

 

바다열차에서 내린 뒤, 픽업하러 온 여행사 가이드의 차를 타고 다시 이곳저곳을 안내받아 다녔다. 경포대, 오죽헌.... 오죽헌에서는 오래전 아이들 어렸을 때 가족사진 찍었던 곳에서 또 한 번 가족사진을 찍었다. 포켓포토로 인화해 원래 사진이 걸려있는 액자에 살짝 끼워놨다. 내 반만했던 아이들이 훌쩍 자라 내 키를 넘겼다. 

 

점심은 주문진 어시장에서 먹었다. 어시장 깊숙히 들어간 곳에 자리 잡은 곳.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한 횟집에서 모둠회를 시켜 먹었다. 상당히 깔끔하고 맛있었다. 주변을 보니 오래된 단골들이 많은 곳이었다. 

 

에피타이저는 소라, 한치, 멍게
모둠회로 메인

 

14:00 대관령 양떼목장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은 대관령 양 떼 목장이었다. 오락가락하는 비로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해야 했다. 우비가 한몫 톡톡히 한 날씨였다. 안개가 자욱한 초장은 아주 분위기 있었다. 해가 쨍쨍할 때 보다 걸어 다니기도 훨씬 덜 힘들었다. 입구에서 왼쪽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안개가 흐르는 초장

그런데, 양 떼 모습은 왜 이래... 비가 오니 더 꼬질한게 아주 냄새까지 더 나는 것만 같았다. 볕 좋을 때 보송해 보였던 아이들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볕 좋은 날 양떼 모습 ▶︎ 대관령 양떼목장과 비선대

 

그것도 그럴 것이, 양들은 목욕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양은 물에 익숙하지 않고 물이 닿는 것을 질색하기 때문이다. 양들이 자라는 곳을 생각해 보자. 양들은 보통 물이 귀해 풀조차 자라기 어려운 지역에서 잘 자란다. 이곳에서 나는 풀이 더 연하고 양이 먹기에 적합하다. 당연히 물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너희들 비가 오니 더 꼬질하구나... ㅠㅠ

 

갈림길에서 또 왼쪽에 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오른쪽 길을 따라 가면 먹이주기 체험장이 나오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목장 정상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는 크게 한 번 도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무로 지은 움막이 나온다. 이 목장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또 해가 뜨나, 늘 멋진 분위기를 만끽하게 해 준다. 

 

목장의 랜드마크 움막
움막 가까이에서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은 이국적이었다. 예전에 늘 다니던 대관령 휴게소 근처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분위기일까. 영국 구릉지와 독일 남부를 뒤섞어 놓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강원도의 매력은- 끝없이 펼쳐지는 능선에 있다. 아래쪽도 산이고 위쪽도 산이다. 강약, 완급을 조절해가며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능선, 능선들. 점점 그 빛이 희미해지면서 하늘에 흡수되는 것만 같다.  

 

끝없이 펼쳐진 능선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매점 근처까지 왔을 땐 비탈길이 마치 계곡 인양 빗물이 쏟아졌다. 

 

조 아래까지 내려가는 사이에 이슬비는 폭우로 변했다.

 

17:25 원주 출발 ▶︎▶︎ 18:50 청량리역 도착

원주를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열차 안에서 깜빡 졸았다. 피곤이 가신다.

 

차를 가지고 다닐 때는 느낄 수 없는 재미와 매력이 열차 여행에 있다. 운전하느라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몰려오는 잠을 뿌리칠 이유도 없고, 긴장할 필요도 없다. 차가 밀린다고 짜증 날 일도 없다. 당일치기 짧은 여정에 자유여행과 패키지 관광을 버무려 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전의 일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앞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은 또 어떻게 될지. 많은 것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바뀌게 될 것 같다는 것도 일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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