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한편에 노란 꽃이 소복하게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별 같기도 하고 방울 같기도 한 귀여운 노랑이들. 병아리 떼가 뿅뿅뿅 나타날 것만 같았다. 사실 병아리가 돌아다니기에 개나리 필 무렵은 좀 춥지 않은가.
위를 올려다보니 나무에 별처럼 다닥다닥 붙어 피어있는 꽃들이 보였다. 귀여운 꿀벌들도 붕붕거리며 모여있었다. 이 꽃 저 꽃 정말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한동안 꿀벌 개체 수가 줄어들어 큰 일이라는 기사를 읽고 걱정스러웠는데, 적어도 이걸로 봐선 한숨 돌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 꽃 이름은 뭘까? 잎사귀 생김은 어쩐지 낯익은데, 생각이 안 난다. 시집살이나 육아가 힘들었나? 아니면 그냥 까맣게 잊은 걸까?
감꽃
집에 와서 고민하고 있던 내게 큰 애가 자기가 안다며 가르쳐줬다. 바로 감꽃이었다. 아. 예전 집 마당에 감나무가 세 그루나 있었는데, 왜 이 꽃을 보고 감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땐 꽃이 훨씬 컸던 것 같았는데....
노란 별 같은 감꽃과 붕붕거리는 꿀벌이 정말 귀여워 짤막한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피었다고 다 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을에 발갛게 익어 매달린 감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추도 아닌데, 이렇게 열렸다가는 나뭇가지가 성한 것이 없을게다. 바람 불면 우수수 떨어지고 열매 맺어야 할 아이들만 달리겠지. 사실 감나무는 유난히 약하다. 그래서 올라가서 따지 않고 잠자리채처럼 장대 끝에 망을 달아 똑똑 딴다. 몸무게 가벼운 것 믿고 올라가면 안 된다. 아이들도 올라갔다 가지가 쭉 찢어져 다치는 일이 많았단다.
옛날에는 이런 감꽃이나 아카시아 꽃을 먹기도 했단다. 둘 다 벌이 붕붕 댈 정도로 향과 꿀맛이 좋으니 꽃 맛도 좋았나 보다. 그런데 아카시아 꿀, 밤꿀은 들었어도 감 꿀은 들어보지 못했다. 혹시 있으려나? (혹시나 해서 찾아봤습니다. 정말 있네요. 색깔은 담황색, 맛은 아카시아 꿀보다 달지는 않지만 은은한 맛이라고 하는군요.) ▶︎감꽃 꿀 채밀
옛날에 처음 직장생활을 했을 무렵에는 입사하면 사수가 도장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마치 먹물을 쿡 찍어 붓으로 그린 것처럼 검은 무늬가 들은 감나무를 먹감나무라고 했다. 이 먹감나무로 만든 도장도 꽤 멋있었다. 또 고가구를 봐도 가끔 먹감나무로 만든 책상이나 장롱을 찾을 수 있다.
회사 이야기가 나오니 또 생각나는 게 있다. 감 떡이다. 사무실 뒤쪽 공덕초등학교 근처에 감 떡집이 있었다. 속에 팥 앙금을 넣은 찹쌀떡을 만들어 감잎으로 싸서 쪄서 만든다. 혈압에 효과가 있다 하고 맛과 향이 독특했다. 가격도 적당해서 어르신들께 선물할 일이 있으면 그 집에 가서 사다 드리곤 했다. 지금은 아마 없겠지.
꽃도 먹고, 꿀도 먹고, 감잎으로는 떡도 찌고 제주도에서는 염색도 한다. 나무로는 도장도 만들고 가구도 만든다. 열매는 말할 것도 없다. 날로도 먹고 말려서 곶감으로도 먹고 식초도 만들어 먹는다. 정말 버릴 게 없는 쓸모 많은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