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 산책 20211111
요 며칠 계속 비바람 불고 얼렁뚱땅 첫눈까지 내렸다. 마지막 가을비와 첫눈이 연이어 내린 셈이다. 어쩐 일인지 화단에는 여름에 피어야 할 분꽃까지 필 정도로 날이 따뜻했었는데, 이렇게 또 갑자기 겨울을 재촉하는 날씨가 되었다. 바쁘다고 제대로 구경도 못한 채 단풍을 이제라도 볼까 싶어 밖으로 나갔다. 화면만 들여다보니 멀미가 날 지경이라 매일 나가긴 했는데, 그게 또 어두워진 뒤라 나뭇잎 색깔도 잘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렇게 찌부둥해서 주룩주룩 눈물만 흘리던 하늘에 파란 구멍이 뚫리고 해가 나왔다. 바람이 그렇게 불더니 구름을 밀어냈나 보다. 흰 구름과 검은 구름 사이로 누가 길을 낸 것만 같다. 푸른 하늘이 반가워 사진을 찍어봤다. 하지만 내 눈에 담긴 것만 못하다. 은행잎의 노랑도 내가 보는 노랑이 아니고, 단풍잎의 빨강도 내가 보는 빨강이 아니다. 왜 이리 어둡고 칙칙한가. 생기는 다 어디 갔는가. 핸드폰을 바꿔야 하나.
걷다 보니 나무 테이블마다 소복하게 은행잎이 쌓였다. 시간이 지나면 또 노란 낙엽 대신 새하얀 흰 눈이 쌓이겠지. 은행나무는 참 빨리, 그리고 높이 자라서 눈 내린 듯 노랗게 땅을 덮도록 잎을 내린 당사자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그 나무가. 얼마나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봐야 보일는지.
이대부중에서 이대부고에 이르는 길은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 잎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낮에는 햇살 아래, 밤엔 온갖 전기불에 비춰져 걸을 맛이 나는 길이다. 하지만 비바람이 다 거둬갔는지, 아니면 내가 너무 늦었는지 이것도 예전 같지 않아 섭섭하다.
별빛 같은 단풍잎이 햇살을 타고 흐르며 춤을 춘다. 옛날 국어책에 단풍잎이 아기 손바닥 같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별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잎들은 빛을 부숴 흩뿌린다. 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내린 가을 잎이 봄꽃보다 더 붉다고 했다. 아직 서리도 제대로 내리지 않은 것 같은데.
볕이 잘 드는 쪽 단풍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더 붉다.
해가 나다 숨다를 반복하더니, 길을 걷다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을 맞았다. 바람은 또 어찌나 부는지. 오랜만에 맥도날드에 들어가 썬대와 커피를 마셨다. 잠시 아포가토로 할까 고민했지만. 번갈아 가며 먹고 마시니 더 맛있다. 따끈하고 쌉쌀한 커피와 달달한 스트로베리 썬대. 굳이 스트로베리 썬대라 쓰는 것은 온통 핑크인 딸기 아이스크림 하고는 또 다르기 때문. 어쨌든 버거보다 음료가 나은 건 아직도 여전하다. 맥도널드가 아니라 맥카페가 맞다.
잠시 쉬었다 노브랜드 들려 집으로. 노브랜드에서 자주 사는 것은 오징어 채와 새우살. 오징어채는 말린 오징어가 아니라 물오징어를 바로 요리할 수 있게 잘라서 얼린 것인데, 가격도 맛도 괜찮고 양도 적당하다. 새우살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좀 크고 꼬리까지 달린 게 먹을 것도 있고 요리를 해 놓으면 예뻐서 그걸 사게 된다.
오늘은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와 주절주절 진짜 일기를 썼다. 요즘 써니보울이라는 비건 음식점을 자주 가는데, 엊그제는 써니 샐러드에 그만 홀딱 반해버렸다. 다음엔 그걸 써봐야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