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산책 + 남산한식집 오징어덮밥
며칠 전. 흐리고 바람 불던 날. 남산을 걸었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 앞 라틴 아메리카 공원에서 구름다리를 건너 남산공원으로 들어섰다. 지난주 마치 초여름 같던 봄날은 환상이었던 것처럼 음산하고 매몰찬 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남쪽 아래 광양에는 매화가 한창인데, 서울 남산은 봄이 오려면 멀었는지.
남산 산책
그래도 봄은 오려나보다. 걷다보니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용감한 매화 몇 송이가 얼굴을 내민 것이 보였다. 동료들은 아직 둥근 꽃망울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넌 춥지도 않았니? 바람이 무섭지도 않았니?
남산 순환도로를 타고 등하교, 출퇴근을 하다 보니 차 안에 앉아서 사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봄이면 갖가지 꽃과 연둣빛 잎새로 시작해 여름이면 녹빛으로 우거진 남산. 가을이면 불타오르는 물들다 겨울이면 흰 눈으로 덮인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하는 것처럼, 봄이 오기 직전이 남산은 가장 황량한 것 같다.
봄에는 노란 꽃이 유독 많이 핀다. 민들레, 개나리, 영춘화, 산수유, 그리고 겨자.... 그런데 이 꽃은 처음 본다. 이름이 뭘까? 마치 포도송이처럼 한데 어울려 피어난 모습이 저희들끼리 꼭 붙들고 바람을 버티는 것만 같다.
동물은 자라나 성체가 되어서야 새끼를 낳는데, 식물은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활동부터 한다. 그리고 나름의 사이클을 돌리면서 죽을 때까지 자란다. 날씨 탓인지 인적이 드물다보니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솔잎이 싸여 카펫보다 푹신한 산길을 걷다 내려왔다. 이래서 조상들은 백리 이백 리를 걷고도 관절이 멀쩡했나 보다. 요즘 같은 포장도로에서 그렇게 날마다 걸어 다니다가는 그야말로 발병 나기 딱 좋겠지.
남산 둘레길 지도다. 붉게 표시된 길을 따라 걸으면 되는데, 실제 이정표는 이것과 다르다. 5번 쯤 가서 6번으로 가는 길에 둘레길 표시가 되어있지 않고 남산 타워 가는 길 쪽으로 둘레길 표시가 되어있다. 그렇다고 이 지도를 보고 가다 보면, 7번쯤 되어 둘레길 대신 찻길로 나가기 쉽다. 이왕 지도를 이렇게 만들어 세워 놨으면 이 색깔과 코스대로 이정표를 일치시켜 표시하면 좋겠다. 둘레길이라고 적힌 빨간 리본을 곳곳에 매달아 둔다든지.
남산한식집 오징어 덮밥
오르락 내리락 산길을 걷다 보니 시장하다. 남산에 갈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들리는 식당이 있다. 바로 남산한식집.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남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다 보면 골목 초입에 있는 집인데, 남산한식집이라고 쓰여있는 파란 간판이 달린 집이다. 허름한 노포. 여기가 과연 맛집일까 싶지만, 내 기준으론 그렇다. 이 근처 살던 친구가 소개한 곳인데, 치명적인 부작용을 경험했다. 여기서 오징어 덮밥을 먹고 난 다음, 다른 오징어 덮밥이 정말 맛없게 느껴지는 부작용이다. 지금도 사진을 보니 다시 가서 먹고 싶어 지네.
설탕, 참기름, 깨소금, 김가루가 들어간 커다란 스텐레스 냉면그릇이 나오고 기본 반찬이 따라 나온다. 기본 반찬은 오뎅 조림, 무채, 시금치나물, 두부 구이, 콩나물 국이다. 그리고 메인 디쉬 오징어 볶음이 나온다. 여기는 덮밥이지만 밥 위에 국물이 흥건한 오징어 볶음을 부어주지 않는다. 이렇게 따로 나온다. 불향이 일품이다. 양배추, 양파 그리고 부추를 듬뿍 넣어 달달하게 볶았다. 아까 그 큰 대접에 공깃밥을 담고, 오징어 볶음을 넣어 비벼먹으면 된다. 추릅. 큰 일이다. 또 사진찍기 전에 먹기부터 했다.
오르는 물가는 이곳도 피해 가지 않았다. 8천 원 9천 원이던 오징어 덮밥 가격이 만원이 되었다. 이제 만 원짜리 한 장 가지고 나가면 밥도 제대로 못 먹게 되었다. 전에는 밥 먹고 커피까지 마실 수 있었는데. 구디로 출근했을 때 빌딩마다 있던 구내식당이 생각난다. 5천 원에 후식까지 제공했었지. 경쟁이 심해 뷔페식에 반찬 종류도 풍성했다. 거기도 지금은 많이 올랐으려나.
남산한식집 위치정보
- 주소 :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44길 40 (우) 04346
- 전화 : 02-797-9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