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불광천-한강 산책
지난 주말 오후. 큰애와 함께 불광천-한강을 걷다 왔다. 원래는 반포대교 쪽으로 가려했는데, 버스를 타려고 하니 시위 때문에 시내 쪽으로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불광천으로 향했다. 성산아파트에서 내려 불광천을 따라 걸었다. 눈앞을 찔러오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모자를 쓰지 않았다면 정말 걷기 힘들뻔했다.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천변으로 내려가 한강과 만나는 지점까지 걸었다. 좁은 천변을 걷다 갑자기 시야가 툭 터지면서 넓은 강변이 눈앞에 드러났다. 천변과 강변은 물냄새가 다르다. 강물 냄새가 좀 더 진하다. 이곳은 홍제천과 불광천, 그리고 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개천이 모여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간다.
가끔 오는 나로서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정말 오래간만에 온 아이는 주변 풍광에 감탄을 연발한다. 원래 가기로 했던 곳 못지 않다며. 내가 보기에도 걷기 정말 완벽한 날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화창한 가을 오후. 온통 가을빛으로 물든 나뭇잎 새로 반짝이는 햇살.
그렇게 가을 오후 한강을 감상하는 것도 잠깐. 편의점 가까이 가더니 갑자기 배가 고파오나보다. 라면 하나 끓여서 나눠 먹잔다. 난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OK!'를 외치고 호기롭게 나섰다. 우리가 고른 것은 스낵면. 면발이 가늘어 좋다. 라면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가장 기본적인 맛이다. 큰애는 안성탕면이 바로 그런 맛이라 하지만. 이상하게 한강에 나와 먹는 라면은 더 맛있는 것 같다. 국물까지 완봉하고 다시 걸었다.
월드컵대교 교각 아래 걸린 태양이 마치 곧 노을이라도 질듯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간다. 명과 암이 함께 물위로 드리운다. 어쩐지 멋져 보여 핸드폰을 꺼내 그 순간을 담아본다. 아직 4시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해가 기우나 싶다. 하긴 요즘은 다섯 시 반이면 해가 진다. 해가 꼴깍 넘어가고 나면 온기는 갑작스레 사라지고 선뜩해진다. 일교차가 심하다. 이럴 때 체온 조절을 잘하고, 몸에 무리가지 않도록 컨디션 관리도 잘해야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깜깜해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기 위해 평화공원 쪽으로 접어들었다. 넓은 잔디 운동장에 여기저기 무리지어 뛰노는 사람들 모습이 여유롭다. 강아지도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주인이 던진 프리스비를 물어온다. 자동차 걱정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마치 해방된 돌고래 같은 소리를 내며 달리고, 유모차에 앉은 아이는 부러운 듯 그 모습을 바라본다.
11월의 불광천-한강 산책
평화의 공원에 있는 넓은 연못 이름은 난지 연못이다. 난지도에서 따온 이름이다. 난지도. 난과 영지의 섬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원래 그런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곳이었단다. 강남에 땅을 살까, 이곳에 땅을 살까 망설이다 이쪽에 땅을 산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강남은 원래 물이 잘 차는 지역인 데다, 서울(옛날, 서울이라면 강북을 가리켰다)에서 너무 멀어 도심에서 가까운 이쪽을 샀단다. 하지만 땅 값이 오르긴커녕 쓰레기 매립지가 되어 버리면서 살기도 어려운 곳이 되어버렸다.
나도 상암동이 재개발 되기 한참 전. 이곳저곳 화실 자리를 찾다 지나가본 적이 있다. 살짝 비탈진 곳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무리 지어 있는 풍경이 타임머신을 타고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듯했다. 하지만 인적 없는 그곳은 마치 버려진 서부영화 세트장처럼 어둡고 적막했다. 어쩐지 마음이 안 됐었다. 그러던 것이 정말 상전벽해. 세상이 뒤집힌 듯 다른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런 난지 연못에 세상이 담겼다. 하늘도 담기고 숲도 담기고, 사람들도 담겼다. 떼를 지어 남쪽 어딘가로 향하는 철새 무리도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