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공원
바람이 몹시 불던 날. 하지만 아직 추워지기 전. 11월의 어느 날. 도산공원을 걸었다.
근처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는데, 멀리 이사간 다음에서야 가봤다. 집 앞엔 잘 안 가게 되는 거. 다들 그렇지 않나? 난 사실 아직도 남산 타워에 한 번도 올라가 본 적 없고, 한강 유람선도 타보지 못했다. 엄마가 그러셨지. 서울 촌년이라고. ㅎㅎㅎ
익숙한, 하지만 많이 변해버리긴 한 골목길을 걷다보니 도산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원에 도착한 역사적인 순간이니, 입구부터 사진 한 방 찍고 시작하자.
왠지 모르게 윤봉길 의사를 모신 상하이 홍구공원이 생각나는 분위기다.
도산공원. 이름 그대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다. 배치도를 보니 기념관과 묘소가 있다. 기념관이 있는 줄은 알았는데, 묘소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1973년 11월,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던 안중근 선생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했는데, 그때 미국 LA에 있던 부인 유해까지 모셔와 합장했다고 한다. 입구를 지나 오른쪽으로 기념관이 있고, 앞으로 쭉 가면 막다른 곳에 묘소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있다.
애기애타(愛己愛他)
애기애타. 애기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애타는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다. 기념관 안에 스탬프도 마련되어 있어, 스탬프를 좋아하는 나는 이번에도 쿵. 찍어 왔다.
묘소 앞에서 잠시 묵념과 기도를 하고 동상을 지나 잠시 걷다 밖으로 향했다.
갈 때는 압구정역 쪽에서 동남쪽을 향해 걸었지만, 나갈 땐 입구에서 쭉 직진을 한 다음 서쪽을 향해 신사동 쪽으로 걸었다.
걷다 보니 재미있는 건물들이 많다.
특히 아래 사진에 보이는 0914. 어린이 과학책에 나오는 벌집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일부를 뜯어내 내부를 보여주는 그런 장면 있잖아. 이 건물은 껍데기를 살짝 들춰보니, 작은 집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은 모양일세.
여기는 플래그십 스토어다. 단순하게 물건을 진열하고 파는 곳이 아니라 만드는 장인과 디자이너, 손님이 어우러지는 장터, 마을 같은 그런 개념이라고 한다. 그래서 밖에서 보기에도 올망졸망한 집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지었나 보다.
조금 더 가니, 그 옆엔 마치 페이퍼 아트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디스플레이 장식이 눈을 사로잡는다. 가만 보니 에르메스. 이쪽은 명품거리로구나.
도산공원에서 나와 큰길로 접어들었다. 길 모퉁이에 떡하니 커다란 바위가 하나 보인다. 이게 무엇이길래 여기 그냥 세워둔 걸까?
앞쪽으로 돌아가보면 커다랗게 쓰여있는 4글자. '도. 산. 공. 원.'
뭐야. 그럼 이 돌이 표지판인거야? 그러기엔 좀 이해가지 않는 것이, 고작 문패 역할을 맡기려고 이 무겁고 커다란 돌을 옮겨다 놓은 것일까 하는 점이다. 설마... 그렇다면 혹시 원래부터 있던 것인데, 욺기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세워두고 간판처럼 세워 놓은 것인가? 도통 모르겠다.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로 가르쳐주세요.
바람은 불었지만 춥지않은 포근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