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로고 사이렌 vs. 세이렌
1999년 7월,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1호점을 개설한 스타벅스는 이제 골목마다 볼 수 있는 카페가 되었다. 직영에 입지선정이 탁월해 스타벅스가 들어간 곳은 입지가 증명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마저 있을 정도다.
그런 스타벅스의 상징은 녹색과 사이렌이다. 스타벅스에서 사용하는 녹색은 포레스트 그린으로, 자연과 신선함, 성장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선한 커피 원두를 사용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커나가겠다는 뜻일까.
스타벅스 로고에 사용된 사이렌은 인어다. 요즘은 바짝 당겨 찍은 것 같은 이미지로 긴 머리를 풀은 여자가 양손에 생선 한 마리씩을 들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지만(내 눈엔 고등어처럼 보인다), 실은 자기 꼬리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어는 보통 인어공주에 나오는 꼬리가 하나 달린 인어지만, 스타벅스 인어는 꼬리가 양쪽으로 하나씩 모두 두 개가 달린 인어다. 예전에. 사용했던 로고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스타벅스의 로고 사이렌
1971년 스타벅스 설립자들은 허만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서 영감을 받아 스타벅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타벅(Starbuck)은 모비딕에 나오는 포경선 피쿼드호의 일등항해사 이름이다.
그리고는 로고를 만들기 위해 해양서적을 뒤지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렌(Σειρήνες Seirēn, 영어로는 사이렌Sirens)을 발견하고는 세이렌을 스타벅스의 로고로 삼았다. 뱃사람들을 홀리는 세이렌이라니, 어쩌면 커피로 고객을 홀려버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때 스타벅스 로고를 보면, 지금과 많이 다르다. 로고 색깔도 녹색이 아닌 커피 색이고, 생김새도 정말 사실적이다. 두 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머리에는 왕관을 쓴 여자가 자기 두 꼬리를 벌려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모습이다. 허리도 통짜에 배도 나온 데다 비늘도 하나하나 묘사되어 있다.
그러다 이런 자세가 민망하고 선정적이라는 항의가 계속되자 1987년부터는 머리카락으로 가슴을 가렸고, 1992년부터는 이미지를 확대하고 복부나 엉덩이도 보이지 않도록 했다. 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이때 사용되던 로고는 글씨는 녹색, 세이렌은 검은색이었다. 그러다 2011년부터는 스타벅스라는 글자도 없애고 모두 녹색으로 통일했다. 또 요즘은 더 확대해서 얼굴만 나오기도 한다.
맨 처음 나온 1대 세이렌도 호감은 아니었지만, 자꾸 얼굴이 크게 부각되니 그것도 좀 징그럽다. 특히 커다란 쇼핑백에 얼굴이 너무 크게 나오면 좀 거부감이 없지 않다(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 갖고 있던 스타벅스 머그에 인쇄된 로고를 보니 사이렌은 검정, 스타벅스 커피라는 글씨는 녹색이다. 1992년부터 2010년까지 사용되던 로고 모습이다.
요즘 사용되고 있는 로고. 확실히 달라진 점이 보인다. 로고를 둘러쌌던 STARBUCKS COFFEE라는 글자가 없어지고, 검정이었던 로고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렌은 이탈리아 남단 카프리 서쪽에 있는 시레눔 스코풀리 Sirenum Scopuli라는 섬에 살았다. 이곳은 날카로운 바위들이 많았는데, 이곳을 지나던 뱃사람들은 세이렌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에 홀려 넋을 놓고 들었다. 그러다 보면 배는 암초에 부딪쳐 부서지고 선원들 역시 목숨을 잃기 마련이었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는 길에 그곳을 지나야 했는데, 세이렌의 노래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자기 몸을 돛대에 묶고 그 지역을 지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오디세우스 역시 안 가겠다고 풀어달라 아우성치지만, 부하들은 미리 명령받은 대로 오히려 오디세우스를 더 꽁꽁 묶고 있는 힘껏 노를 저어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런데 이때 세이렌들을 보면 전혀 인어와는 관계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인어라면 반인반어인데, 사실 오디세이에 나오는 세이렌은 반인반조다. 얼굴만 사람이고 나머지는 새인 것이다. 인면조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런 세이렌이 어떻게 해서 인어 모습이 되었을까?
북유럽의 인어 전설
북유럽에는 셀키나 메로우 또는 하프스루프라는 인어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들은 세이렌과 비교해 더 인간에 가깝다. 19세기 안데르센의 동화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현대의 인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북유럽의 인어 전설은 중세에 들어와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 이야기와 뒤섞이게 되었고, 어느 틈에 인어 모습을 한 세이렌이 등장하기도 했다. 스타벅스의 사이렌로고가 인어가 된 데에는 이런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셀키, 메로우
셀키나 메로우는 켈트족 전설에 등장하는 인어다. 아일랜드에선 메로우(Merrow), 스코틀랜드에선 셀키(Selkie)라고 한다.
셀키는 물개인간 전설인데, 물개가죽을 벗으면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그 가죽을 빼앗기면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남자 사람이 여자 셀키의 물개가죽을 훔쳐 아내로 삼지만, 결국 가죽을 되찾아 바다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와 켈트족은 어떤 교류가 있었을까?
메로우는 아일랜드 이야기 답게 좀 더 마법적 능력이 더해진 캐릭터다. 마법 모자나 망토를 착용하고 바다와 육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인데, 여자 메로우는 특히 아름다워 인간 남자와 종종 사랑에 빠지고 결혼도 한다.
하퍼스루프
하프스루프(Havfrue)는 덴마크어로 인어를 뜻하는 말로, 스칸디나비아 전설에 등장한다. 이들은 바다의 수호자로 항해자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수중왕국 사람들이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미래-특히 폭풍우를 예견한다고 한다. 주로 한여름 밤에 모습을 드러내며, 달빛 아래 춤을 추곤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하퍼스루프 이야기는 나중에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의 모티브가 되었고, 코펜하겐의 작은 인어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맺는말
스타벅스의 로고는 별이 달린 왕관을 쓰고, 양손에 꼬리를 하나씩 들고 있는 사이렌이다. 이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에서 나왔다.
세이렌은 원래 새의 날개와 발을 가진 여인의 모습이었으나, 중세 이후 북유럽 신화가 융합되면서 물고기 꼬리를 가진 인어 모습을 한 버전도 탄생하게 되었다.
스타벅스는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인어 버전의 세이렌 모습을 로고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