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는 과연 사르트르가 한 말일까?"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라는 말이 있다. 태어나서(B, Birth) 죽기까지(D, Death) 쉼 없이 선택(C, Choice) 해야 하는 인생. 그 선택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럼 이 말을 맨 처음 한 사람은 누구일까? 보통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터넷에서 찾아보자
궁금하면 찾아봐야지.
한국어-영어-불어
일단 구글에서 한글로 찾아보았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라는 말을 검색하니,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의외로 음악이었다. 2022년 브금강사가 발표한 '선택과 운이 공존하는 이곳에 초대합니다'라는 앨범의 수록곡이다. 그다음에 나오는 것들은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아니다 하는 내용이다.

그다음엔로 찾아보았다. "Life is C between B and D."로 검색하니 별로 나오는 게 없다. 사르트르가 프랑스 사람이라 그런가 싶어 불어로도 찾아보았다. 학교 다닐 때 들었던 교양불어 수업은 영어보다도 더 기억나는 게 없다. 구글 번역기를 돌렸더니 "La vie est C entre B et D."란다. 하지만 불어로 검색한 것도 결과물이 신통치 않다.
이상하다. 영어건 불어건 사르트르가 한 말이면 한글로 찾았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검색되어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이번에는 chatGPT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물어볼 때마다 다른 답을 내놓는다.
- 장 폴 샤를, 로멩 로카르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한 말이다
- 장 폴 샤를 르카르라는 철학자가 한 말이다
- 장 폴 르 카르라는 가톨릭 신부가 한 말이다....
공통적인 것은 사르트르가 한 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이름이 비슷한 이 장 폴 샤를 르 카르라는 사람이 한 말이라는 것(사실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며...)이다.
시기별 검색
이번엔 시기별로 검색해 보았다. 언제 어디서 처음 사용했는가, 또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언제 어떤 언어로 된 것일까 하는 점이 궁금해졌다.
한국어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2000년 3월 29일 조달청 홈페이지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 시대 뛰어넘는 교훈'이란 글이었다. 하지만 이 기간에 'Life is C between B and D'는 검색되는 것이 없었다. 물론 la vie est C entre B et D나 la vie est C entre B et T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어로 된 내용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2012년 페이스북에 올라온 것이다. 그 내용은 사람에겐 옳은 길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살아가는 동안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사르트르니 프랑스 철학자니 하는 말은 하나도 없다. 2018년 TEDx에서 김동주 학생이 짧은 강연을 했는데, 이때 제목이 'Life is C between B and D'였다. 2022년 엑스(@jinkwik/옛 트위터)에 비로소 '프랑스 철학자가 한 말'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의문점
자,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이 몇가지 있다.
첫째. 사르트르가 한 말이라면 서에서 동으로 전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 2000년 한국이고 서구의 기록은 2020년을 전후로 등장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문장이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지나 서구로 전해진 건 아닐까?
둘째. 사르트르건 아니건 과연 이 말이 프랑스 사람이 한 말이긴 할까? 왜 그런 생각을 했냐 하면, 불어로 탄생은 Naissance이고, 죽음은 Mort다. 둘 다 B와 D 하고는 거리가 한참 멀다. 또 N과 M은 역순일뿐더러, 둘은 연달아 있어 다른 알파벳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불어로 하면 어떨까? 불어로 요람은 berceau, 무덤은 tombe니 B는 맞아도 D는 아니다. 물론 B와 T사이에 C(choix)가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것 말고도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다.
결론
이제까지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 불어로 한 말이 아니라 영어로 한 말이다.
-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인터넷에 등장한) 말이 점차 외국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 말이 어째서 사르트르의 말이라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사르트르의 분위기나 철학과 잘 맞는다고 생각되어 그랬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 이것은 사르트르가 한 말이 아니다.
- 장 폴 샤를이라는 철학자나 장 폴 르카르라는 신부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 출처는 명확하지 않다.
인터넷에 여러번 반복되어 제공되는 정보라 하더라도 항상 진실된 것은 아니다. 늘 거짓이나 오류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블로그 글을 쓸 때, 우리 역시 이런 오류를 자기도 모르는 새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

열매맺는나무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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