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 샌드위치 가게 Le P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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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샌드위치 가게 Le Pul

전날 모처럼 날 위해 옷을 샀다. 밍크 털이 달린 두툼한 기모 레깅스와 원피스처럼 길게 내려오는 폴라 니트. 까만색과 은회색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집에 와서 입어보니 이게 웬걸. 레깅스는 내가 싫어하는 골반에 걸치는 스타일이었고, 웃도리도 내가 생각했던 그런 핏이 나지 않았다. 그래, 이게 다 내가 갑자기 살찐 탓이지.

운동할 결심을 했다. 더불어 덜 먹을 결심도. 아침도 가볍게 먹고 남편과 집을 나섰다. 정동길을 걸었다. 촉촉하게 비가 내리는 이 길도 좋다.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이 고즈넉함이 마음에 든다.

그러다 발견한 귀여운 가게. Le Pul.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나. 비건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식을 원하는 자들을 위한 채소 위주의 샌드위치 가게처럼 보이니... 아무래도 '풀'? 가게가 예쁘다니 남편이 얼른 들어가잔다. 아, 아니... 나 살 빼러 나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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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보니 밖에서 보는 것과는 분위기가 살짝 다르다. 밖에서 봤을 때는 지붕도 낮아 호빗 마을이 연상되는 포근한 컨트리 스타일이었는데, 내부는 벽도 바닥도 타일이라 살짝 차가운 느낌이 든다. 천장도 노출식이라 휑하네.

비가 내려 그런지 살짝 수채 냄새와 더불어 지하실 냄새가 느껴졌는데, 아마 옆 건물의 차고 내지는 지하실과 연결된 부속건물이었던가. 쓸데없이 예민한 내 코에만 느껴졌고 보통사람인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니 개의치 않아도 될 듯 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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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샐러드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서 나눠먹기로 했는데... 샐러드, 너 왜 이렇게 큰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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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찍어서 높이가 잘 느껴지지 않아서 그렇지 냉면그릇처럼 넓고 우묵한 그릇에 채소와 닭가슴살, 곡류가 작은 산처럼 쌓여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한 빵까지!

아무리 채소라지만, 많이 먹으면 살찌는데. 코끼리도 코뿔소도 모두 생각해보면 초식동물 아니던가. ㅠㅠ

그랬다. 옛날부터 남편과 걸으러 나오면 그 길은 꼭 먹방으로 끝났었다. 그러니까 결국 나오는 목적이 달랐던 게지.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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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궁금해할 분들을 위해 계산대 옆 메뉴판도 올려본다. 여자 손님의 경우, 혼자 먹기엔 좀 많고, 둘이 먹기엔 좀 부족한 듯한 양일 것 같다. 라자냐 하나에 샐러드 하나 그리고 음료를 주문해서 둘이 나눠먹으면 점심으로도 충분할 듯. 작은 테이블도 많으니 혼자 가서 샌드위치 하나 먹어도 좋을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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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마치고 나오다 보니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도 예쁘네.

촉촉해서 더 분위기 있던 정동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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