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간의 사정
2019년 8월에서 9월 사이.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는 남편과 둘이서 함께 일하던 터라 긴 여행은 함께 떠나기 어려운 사정이었다. 만약 그때 내 고집대로 함께 휴가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언제 다시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후회하고 있을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또 정신없이 밀린 일을 처리했다. 한숨 돌리고 여행했던 추억을 글로 옮기려니, 여행하는 동안 틈틈이 기록해뒀던 빨간 수첩이 사라져 벼렸다. 그래서 그만 스톱. 나중에 찾긴 했지만, 그땐 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하느라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시간이 좀 많아진 요즘, 남은 기억을 되살려 정리해보기로 했다.
2. 서울-뮌헨
오전 10시 25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오후 2시 20분에 뮌헨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여행에는 나름의 설렘이 있다. 그 덕에 떠나는 길은 돌아오는 길보다 덜 힘들다. 가만히 앉아 움직이기 어려우니 놀랍도록 소화가 느렸다. 평상시엔 4시간 간격으로 뭘 먹어줘야 했는데, 비행기 안에서는 더딘 소화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잊을만하고 지루할만하면 먹을 걸 준다.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사육당하는 기분으로 하늘을 날았다.
루프트한자는 독일 비행기인 만큼 기내에서 바르슈타이너를 제공한다. 1753년 설립되었단다. 캔맥주는 쇠맛이 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맥주는 부드러워 짭조름한 프레첼과 먹기 좋았다. 다른 기내식은 찍지 않았는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좀 찍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깜빡하고 칫솔치약을 큰 짐에 넣어버렸다. 로션이나 립밤이랑 함께 챙겼어야 했는데. 그 오랜 시간을 껌이나 씹는 구강청결제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승무원에게 살짝 부탁해 얻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닦고 양치를 하자니 물이 찜찜했다. 물은 계속 제공되니 마시는 물로 해결했다. 다음엔 잊지 말고 꼭 챙기자고 다짐했다.
3. 로텐부르크
뮌헨 공항에 도착했다. 뮌헨 공항에는 에어브로이라고 양조장도 있다는데, 함께 간 일행과 맞추느라 들러보지도 못했다.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첫 번째 목적지 로텐부르크로 향했다.
뮌헨은 놀랍도록 서울과 흡사했다. 쭉쭉 뻗은 길에 붐비는 자동차, 고층 빌딩들. 심지어는 길가 심긴 나무들 마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너무나 똑같은 느낌이었다.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
로텐부르크는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 Rothenburg Ob der Tauber를 줄인 말이다. 타우버 강 위의 로텐부르크라는 뜻인데, 신성로마제국의 자유도시(1274~1803)였다고 한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프린츠 Prinz 호텔이었다. 로텐부르크 성벽 바로 옆에 보이는 호텔이다. 성벽 지붕 아래 난간이 보이는데, 걸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로비에 있던 책자에서 지도를 발견했는데, 나중에 수첩에 오려 붙였다. 가족이 경영하는 호텔로 보였다. 이런 호텔은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여기던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특히 야간 룸서비스는 없거나, 할증 요금이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놀라운 것은 8월 말 이뜨거운 날씨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 편의를 위해 문화재를 다치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로비에 있는 직원에게 밤에 더우면 어떻게 자냐고 했더니, 창문을 열면 된단다. 방충망이 있냐고 했더니 그것도 없단다. 모기 없냐고 했더니 모기도 없단다.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날 밤이었다. 덥고 답답해서 창문을 열었다. 창문 앞 발코니는 제법 큰 정원이었다. 그런 풀숲이면 모기며 날벌레가 있을 법 한데, 정말 자는 내내 날벌레는커녕 모기도 찾을 수 없었다. 신기하기도 하구나. 독일엔 모기가 없는 것일까. 다음 날, 아침을 먹으면서도 모기가 없더라는 얘기를 나누었다.
로텐부르크 성 투어
로텐부르크는 로맨틱 가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중세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동화 속 나라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로맨틱 가도(Romantische Straße)란 우리가 흔히 '로맨틱하다~'하는 로맨틱한 길이 아니다. 뷔르츠부르크와 퓌센을 연결하는 길이 350km의 도로로, 고대 로마 사람들이 건설했기에 붙은 이름이다. 1950년대부터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내가 한바퀴 돌려고 나섰을 때에는 하필 저녁 시간이었다. 각도에 따라 사진이 몹시 어둡다. 또 식당을 뺀 많은 가게들이 닫혀 있어 아쉬웠다.
로만틱 호텔 입구다. 유럽을 다녀 보니, 곳곳에 재미있는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식당이면 포크와 나이프로, 구두 가게면 구두 모양으로 간판을 만들어 걸어 놓는다. 여기는 식당과 숙박을 같이 하는 호텔이라 포크와 나이프에 열쇠까지 더해서 간판을 만들었다. 이런 간판은 심미적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문맹이 많았던 옛날,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쉽게 알고 들어와 돈을 쓰게 하기 위해서였다.
로텐부르크는 위도 49도에 위치해있다. 높은 위도에 있는 도시라 저녁 7시 반이 되어도 8시가 되어도 그저 환하다. 걷다 보면 종종 지붕에 창이 나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치 사람 눈 처럼 생겼다. 오랜 세월 동안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겠지 싶다.
로만틱 가도 바닥은 돌이 깔려있다. 옛날 세계사 시간에 고대 로마 사람들은 길에 길다란 말뚝 같은 돌을 때려 박아 아직까지도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촘촘하게 돌이 깔려있는 것을 보니 그때 그 수업시간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 서울엔 거의 매년 보도블록을 새로 까는데, 이 사람들은 로마 사람들이 길을 깔아준 덕에 보도블록 교체할 생각도 할 필요 없이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따라 쭉 걸어올라가면 마르크트 광장이 나온다. 독일엔 도처에 마르크트가 있다. 영어로 하면 마켓이다. 옛날엔 이 광장에 장이 섰겠지. 사람들은 그 시장에서 장을 봤다 살았겠지 싶지만,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아직도 장이 선다. 특히 크리스마스 마켓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겨울에 오면 춥고 날씨도 좋지 않겠지만,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만 같다.
광장 가운데 있는 Rathaus. 시청이다. 처음에는 왜 시청을 rathaus, 쥐의 집이라고 쓰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검색해 보니, rat은 쥐가 아니라 의회, 협의회라는 뜻이었다. 하마터면 무식할 뻔했다. ㅎㅎ
이 건물은 1250년에서 1400년대에 지어졌는데, 인형이 나오는 벽시계가 유명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5시까지 하루 7번 매시 정각에 공연(?)을 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놓쳐버렸다. 하지만 사실 별 것 아니고 시계 양쪽에 난 창문이 열리면, 그 안에 있는 인형이 컵을 들고 뭘 마신다. 그냥 그걸로 끝. 하지만 1683년 당시에는 얼마나 신기했을까. 30년 전쟁 때 포도주 마시는 내기에 이겨서 로텐부르크 시를 구한 시장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재미있다.
겨자색 목조 건물 벽에 커다랗게 TEDDYLAND라고 적혀있다. 크고 작은 곰들이 가득 있는 테디 베어 가게다. 들어가 보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었다. 문 앞에선 커다란 곰이 '좀 일찍 오지 그랬어.'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성곽 투어와 저녁식사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로맨틱 가도 동영상을 가져와봤다.
2년이나 흘러버려 사진을 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안타까움. 어딜 다녀오면 바로바로 정리해서 올려야 하는데, 여행 앞뒤로 공백을 메우느라 일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다니면서 메모해 놓았던 빨간 공책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낙심해서 더 뭘 적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제 당분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종종 시간 나는 대로 정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