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컴컴한 새벽. 바람이 몹시 부는지 덜컹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귀찮았지만 일어나 베란다 문을 닫고 들어와 다시 잠을 청했다. 출근 시간에도 비가 내리더니, 금세 잦아들었다. 운동부족이 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이런 날이 오히려 시원해 걷기는 더 좋지. 신촌역에서 서강대 앞으로 향하다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선 숲길로 접어들었다.
경의선 숲길 산책
경의선 숲길을 걷다 보니, 특이한 열매가 눈에 띄었다. 붉은 가지에 초록색 잎이 무성하다. 그 끄트머리에 하얀 열매가 오밀조밀 달려있었다. 이게 뭐지? 보리수 열매도 그렇고, 구기자나 오미자도 그렇고, 이런 열매들은 보통 붉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하얀 열매는 보느니 처음이다. 무슨 열매일까?
열매에서 조금 떨어진 옆에 이렇게 별처럼 생긴 하얀 꽃이 피어있었다. 아마 이 꽃이 진 자리에 맺힌 열매 같았다. 이름이 뭘지 궁금하다.
집 앞 마당 가득 수국이 피어있다. 역시 수국은 여름 장마비를 좋아한다.
탐스러운 수국 사진을 찍으려다 다가가다 보니, 길가 풀밭에서 힘을 쓰고 있는 고양이가 하나 있었다. '신경 쓰지 말아라, 나는 네게 관심이 없다. 하던 거 계속해라' 하는 마음으로 눈길을 주지 않고 오로지 수국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사진을 다 찍고 돌아서니 볼일 보기를 마친 치즈 냥이 다시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목이 탈 일은 없겠다 싶다.
비가 내린 뒤 풀숲에서 나는 향은 어쩜 이리 신선한지! 공기가 맛있었다. 공기가 맛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공기가 좋은데, 마스크를 쓰고 걸어야 하다니, 정말 속상하다.
전에 언젠가, 물을 돈 주고 사서 마신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노릇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미세먼지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돌아다닐 수 없고,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세상이 오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 있었나. 마스크 없이 나다닐 수 있는 때는 다시 돌아올까.
하얀 열매가 궁금해 검색해 봤더니, 바로 '흰 말채나무 열매' 였다. 흰 말채나무는 흰말채나무는 층층나무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 북부지역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관상수로 가치가 높아 전국 공원이나 정원에 많이 식재하고 있다고 한다. (국립 수목원 나무 이야기 참고)
경의선 숲길은 총 6.3킬로미터로 서울에서 가장 긴 공원이다. 마포구 연남동에서 용산구 원효로까지 이어져있다고 한다. 2005년 경의선이 지하화 되면서 필요 없게된 철길을 이용해 조성되었다. 센트럴 파크 느낌이 난다고 해 연트럴 파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용하는데 시간 제약도 없고 입장료도 물론 없다. 울타리도 경계도 없다. 어디서 산책을 시작하고 끝낼지도 역시 내 마음 내키는대로 할 수 있다. 기찻길 따라 옛날에 지어진 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 리모델링해서 가게가 된 집들이 많지만, 사람 사는 주택도 많다. 옛날 시끄러웠던 기찻길이 이제는 가꿀 필요 없는 넓다란 정원이 된 셈이다. 공원은 공원이지만, 정말 어쩐지 남의 집 정원을 걷는 기분이다. 이런 곳에서는 특별히 조심히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