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나들이 - 카페 프로토콜, 파크먼트 연희, 곳간

이른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국군의 날. 밥을 먹고 연희동으로 마실을 나갔다. 임시지만 공휴일로 지정된 덕분이었다. 사실 국군의 날은 임시가 아니라 다시 정식 공휴일이 되어야 한다. 노는 날 하루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나를 대신해 나라를 지키는 군인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와 존중을 표시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카페 프로토콜 PROTOKOLL

우리가 간 곳은 프로토콜 Protokoll이라는 카페였다. 하나은행과 국민은행 사이에 있는데, 계단을 올라 입구로 들어가서는 깜짝 놀랐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사람도 조명도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ㅎㅎㅎ
 

연희동 나들이 - 카페 프로토콜, 파크먼트 연희, 곳간

 
정말 당황스러웠다.
‘어? 이제 영업 안 하는 건가? 아니.. 그럼 문이 닫혀있어야 할텐데. 아직 영업시간이 안 된 건가?’ 하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
 
천장은 형광등 하나 없는 노출 콘크리트에 카페건 식당이건 영업장에선 잘 쓰이지 않는 메탈 소재의 집기와 탁상 스탠드, 그리고 뭐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서랍장들. 이건 정말 불 꺼진 학교 실험실… 그것도 더 이상 쓰지 않는…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분위기였다. 뭐지? 괴담영화 콘셉트인가?
 
어정어정 주춤주춤 들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90도 돌아보니 한쪽 구석에 불이 켜 있고 사람들이 몇 명 모여있었다.
 

 
‘저, 여기 영업하나요?’
‘지금 오픈한 거 맞나요?’
등등의 질문에 답을 듣고서야 영업 중인 카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도저히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고, 너무 어둡기도 해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일단 들어왔으니 다른 데 가기도 뭐 해 앉긴 앉았는데, 이것도 콘셉트인지 벽에 칠한 것도 다 떨어져 나가고 테이블도 의자도 다른 집기도 그다지 청결한 느낌은 아니라 내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자리마다 작은 안내문이 아크릴에 끼워 있었다. 어떤 가게인지, 와이파이와 화장실 위치 안내 등이 적혀있었다. ‘우리의 기록은 계속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프로토콜의 C대신 쓰인 K와 한 번 더 쓴 L엔 무슨 뜻이 들어있을까 궁금했지만, 어쩐지 쓸데없는 말은 시키기 어려운 분위기. 좀 바보같이 들리긴 하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나중에 생각하니 영업하느냐고 물을 때까지 어서 오란 말 하나 없어 그랬던 것 같다. 나 환영받지 못한 거였나.
 

와이파이 비번은 가렸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카페 라테와 아이스 카모마일, 그리고 파운드케이크 한쪽. 원두를 고를 수 있는데, 과일향 나는 걸 선택했고 그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고소하면서도 산미와 단맛이 살짝 감돌았다. 지금 글 쓰면서 이날 곳간에서 사온 빵을 한 쪽 먹고 있는데, 프로토콜에서 마신 이 라테 한 잔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카페 라테 & 아이스 카모마일
향과 맛이 일품이었던 카페 라테

 
커피는 맛있었는데, 케이크는 한참 있다 가져다줘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해동하느라 그렇단다. 해동이라니… 그럼 냉동? 디저트류는 잘 나가지 않아 냉동해 뒀다 필요하면 해동하는 그런 시스템인가?


 
나름 유명한 곳인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 분위기도 그렇고 해서 한 시간 정도 있다 일행을 재촉해 그냥 나와 다음 행선지인 파크먼트 연희로 출발했다.

 

 

파크먼트 연희

프로토콜에서 나와 큰길이 아닌 뒷길로 들어갔다. 파크먼트 연희를 가기 전에 들린 곳은 사러가 쇼핑. 마지막 코스로 곳간에 가서 식빵을 살 텐데, 곁들일 잼이 필요해서였다. 하지만 잼은 물론이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라면을 두 가지나 더 샀다. 이날 먹은 환상적인 라면은 다음 기회에…. ㅎㅎㅎ

 

그렇게 장본 것을 들고 파크먼트 연희로 향했다. 파크먼트는 무슨 뜻일까 공원과 아파트먼트? 주차장과 무브먼트? ㅋㅋ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사실 파크먼트는 이곳은 '파크'와 '페이브먼트(보도)'의 합성어로, 도시 속 공원 같은 휴식 공간을 표방한다고 한다.

 

 

이곳은 입구부터 단독주택 느낌이 물씬 난다. 잭슨 카멜레온이라고 대문자로 큼직하게 쓰여있는데, 잭슨 카멜레온은 이름과는 달리 현대 미술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이다. 자연석으로 만든 층계를 올라가면 여러 채의 집을 하나로 이어 만든 공간이 나오는데, 벽면에 전시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여러 채의 집이 A, B, C, D동으로 각각 구분되어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B동에 카페가 있긴 하지만 건물 대부분은 가구와 인테리어 쇼룸이다. 널찍널찍한 공간에 심플하면서도 편안한 가구들이 잘 배치되어 보는 사람 기분마저 저절로 좋아지는 그런 공간이었다.

 

 

깔끔하고 잘 정리된 공간. 흐린 날이었는데도 채광이 좋은 개방감 있으면서도 아늑한 분위기. 가구는 모던하지만, 풍부한 자연광과 식물이 따스하고 자연스러운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먼저 갔던 프로토콜보다는 이쪽이 내 취향.

 

벽면에는 잭슨 카멜레온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카페에 예술적인 감성을 더한다. 잭슨 카멜레온은 한국의 현대 미술가로, 그의 독특한 팝아트 스타일의 작품들이 카페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있다.

 

 

이곳이 이렇게 영업 공간으로 바뀌기 전에는 개인 주택이었을 텐데, 그땐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곳간

연희동의 마지막 목적지는 '곳간'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적인 저장 공간을 연상시키는 이 가게는 다양한 빵과 베이커리 제품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특별히 찾아간 이유는 곳간의 유명한 식빵 때문이었다. 곳간의 식빵은 부드럽고 촉촉한 질감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자연 발효종을 사용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가게에 들어서니 딱 12시. 반죽기 일까? 베이킹 기계 소음이 가득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면 좋았으련만. 새 빵이 나오기 직전이라 남은 빵은 식빵 한 가지뿐이었다. 결대로 쭉쭉 찢어먹는 걸 좋아해 자르지 않은 식빵을 사려고 했지만, 이미 다 커팅해 놓은 것 밖에 없었다.

 

쭉쭉 찢어지는 식빵을 좋아하게 된 것은 엄마와의 추억 때문. 따끈한 식빵 속을 찢어 '닭고기 같지?' 하며 버터를 발라 주시던 엄마. 우리 엄만 속살만 주고 껍질은 당신이 잡숫고...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 오히려 '겉에 껍질도 먹어야지. 그건 누가 먹으라고.' 하는 엄마였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잘라낸 식빵 껍질은 튀겨 러스크로 만들어 주던 엄마. 세 딸을 응석받이가 아니라 강한 딸로 키운 우리 엄마. 갑자기 보고 싶네.  

 

사장님은 한창 빵을 만드느라 바빴다. 원래 이곳은 무인 가게. 매장 왼쪽에 있는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꽂고 내가 직접 승인을 받아야 한다. 화실을 그만둔 뒤 처음으로 내손으로 카드 승인을 받아봤다. 그래도 손에 익은 것은 잊지 않고 자동으로 되었다. 전표는 옆에 있는 금고모양 작은 초록색 통에 넣어주면 된다. 포장도 내 손으로 직접 하고 큰 소리로 인사한 다음 가게를 나섰다. 어쩜 곳간과 빵은 사진 한 장 찍은 게 없네. ㅜㅜ

 

CC0 1.0

 

빵을 구매한 후, 우리는 연희동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프로토콜의 독특한 분위기, 파크먼트 연희의 아늑함, 그리고 곳간의 맛있는 빵까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이 세 곳을 통해 연희동의 다양한 면모를 경험할 수 있었다.

 

 

  •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420-1
  • 전화 : 029994722
  • 시간 : 매일 오전 11시~오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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