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첫 날을 그냥 보낼 수 없어 타박타박 한강 산책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드디어 피기 시작한 무궁화가 나를 반긴다. 여름 내내 찬 바람 불 때 까지 피고지고 또 피고 질 무궁화. 도르르 말려 똑 하고 떨어지는 모습은 가는 뒷 태까지도 얼마나 단아한지. 온 길에 낭자하니 흩어지는 다른 꽃들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산책은 홍제천부터 시작해 한강으로 이어지는 코스. 사천교 근처 옹벽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능소화 무리. 한번 승은 입은 궁녀가 애절하게 임금님을 기다리다 꽃이 되었다는 그 꽃이다. 문득 주현미 '신사동 그사람'이 생각난다. '자정넘어 새벽으로 가는' 시간까지 '행여 오늘도 다시 만날까 그 시간 그자리'를 헤맨다던 노래가사를 듣고 어처구니 없어했는데. 능소화가 되어버렸다던 그 궁녀는 연인을 기다렸던 것일까 아니면 출세의 기회를 기다렸던 것일까.
천변에는 나리 꽃이 한창이다.
돌틈에는 나도 봐 달라는 듯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애기똥풀도 있다. 왜 들꽃 이름이 하필이면 애기똥풀이냐고?
줄기를 꺾으면 이렇게 기저귀에 뭍은 애기 똥 처럼 노란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감으로 써도 되지 않을까 싶도록 진하다.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을 강제로 빼는 관이다. 위험하다는 경고문이 옆에 보인다. 크기를 알 수 있게 옆에 사람이라도 세워놓고 찍을 걸 그랬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면 저 근처로는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겠다. 그럴 때면 어차피 천변으로 가지도 못하게 통제가 되겠지만 저리로 나오는 물이라면 삽시간에 휩쓸려 무서운 상황이 될것이다.
위쪽에서 찍는 바람에 제대로 담지 못했지만 마치 르느와르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비탈진 언덕, 햇살, 가득한 풀과 들꽃, 그리고 바람...
한강으로 나왔다. 성산대교가 바라보이는 편의접 파라솔 아래 앉아 캔맥주와 제법 큰 어육 소시지를 먹는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덮어놓은 왕뚜껑이 날아간다. 가벼운 것들은 모두 잡고 있어야 할 판. 구름도 볕도 바람도 모두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비가 더 와야 하는데...
월드컵 경기장 쪽으로 나오니 갖가지 무궁화가 가득 피어있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등교길엔 돌담 따라 마냥 피어나던 무궁화였는데, 한동안 보기 힘들어 아쉬웠다. 하와이에 도착하면 목에 걸어주는 히비스커스 레이는 하와이 무궁화로도 불리운다지. 우리 무궁화로도 뭔가 정다운 물건을 만든다면 더 친근해지지 않을까.
6월도 다 가고 7월 이라니. 일 년의 반이 뭉텅 지나가버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일년 다 간 것 같던데. 2학기는 정말 짧은데.